치앙마이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방콕에서 엄마와 이모를 만났다. 혼행을 하다 마지막 여정은 가족과 함께하는 일을 여러 번 해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방콕과 끄라비를 일주일 간 여행한 후 한국으로 다 함께 돌아가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방콕에 머물면서도 자꾸만 치앙마이가 생각나니, 시간 많은 백수가 어쩔 도리가 있나. 돌아가는 날짜를 보름 늦췄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명상센터에 가는 것이었다. 이 역시 앞선 글에서 내게 스님과의 대화를 추천했던 이스라엘 청년의 추천이 있었다.
태국 치앙마이엔 명상 수련을 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왓 람 펑’ 사원이다. 이곳에서의 명상 수련은 기본이 열흘 가량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행자가 하기엔 가장 고난이도다. 오로지 명상만을 위한 날들로 채워지며, 그러기에 어떤 대화도 기록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거나 뭔가를 보는 행위도 금한다. 물론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않거나, 새벽부터 일어나는 스케줄은 당연하다.
그리고 두 번 째로는 ‘왓 우몽’ 사원에서 진행하는 명상 수련도 있다. 이곳은 산책할 겸 방문했다가 명상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보고 직접 문의해 안내지를 받아왔던 곳이다. 왓람펑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듯한데, 그 기간에 조금 더 유연성이 있다. 다만 최소 기간이 3일이다.
명상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고, 경험해보고는 싶은데 위 프로그램들이 부담스럽다 싶을 땐 ‘왓 쑤언독’ 사원의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나 역시 이 사원에서의 일일 체험을 먼저 접한 후, 1박2일 프로그램도 신청하게 됐다.
일주일에 하루, 1일 명상 코스가 있다. 대략 6시간 정도를 할애한 것으로 기억한다. 해당일 해당 시간에 맞춰 사원에 가서 참여하면 되는 것인데, 긴 바지를 입고 단정하게 가야하는 것은 필수. 길이가 짧지 않아도 속옷 비침이 있는 옷은 매우 실례가 되는 옷차림이다. 1시간 가량 불교에 대해 안내를 받고 다양한 명상법을 배워보는 것이 목적. 그 후 원하는 이에 한해 스님과의 대화를 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코스가 무척 좋았기에 1박2일 프로그램도 신청했다. 이 프로그램은 제한 인원이 있어서 미리 신청하는 것이 좋다. 해당일이 되면 일단 왓 쑤언독으로 모여 불교 공부를 하고, 사원에서 40분 가량 떨어진 명상 센터로 이동한다.
이곳의 생활 규칙은 왓람펑이나 왓우몽보다는 조금 자유롭다.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저녁을 준다는 것. 원래 이곳 스님들은 낮 12시경 하루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다음날 새벽까지 공복이어야 한다. 왓람펑과 왓우몽은 그 리듬을 철저히 지키는 반면 왓쑤언독의 프로그램은 조금 더 여행자가 접근하기 편한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화는 금지지만 개인 자유시간에 책을 읽거나 기록을 하는 일도 가능하다. 숙소에서라면 휴대폰을 봐도 무방한데 사실 별 의미가 없는게, 아예 터지지를 않는다.
명상 센터에서의 스케줄은 도착 후 일단 몸을 깨끗이 샤워하고 위아래 모두 하얀색인 옷으로 환복하는 것이 첫번째. 그 후 기도를 하고 본격적인 명상법을 배우게 된다.
명상법에는 앉아서 하기, 누워서 하기, 걸어다니며 하기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좌식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은 아빠 다리 자체를 힘들어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명상이 무엇일까. 그로 인해 얻는 효과는 뭘까. 센터에 들어가기 전날 침대에 누워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참 생각이 많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주된 생각 외 날 갉아먹기도 하는 잡생각을 떨쳐내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 아니면 그 생각들을 편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명상이란 적어도 그런 방법을 배우는 게 아님은 확실하다는 게 나의 경험에 의한 결론. 오로지 내 몸과 내 호흡에 집중하는 것.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다만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하루가 지나면 스스로에게 잘 맞는 명상법으로 알아서 명상을 하도록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때가 되면 오히려 그 전날 수련한 것과 익숙함이 더해져 더 명상이 잘 이루어질 것 같지만 전혀. 내 몸과 호흡에 가장 잘 집중할 수 있는 건 오히려 명상법이 익숙지 않았던 첫날 첫 수련 때다. 그 이후로는 ‘생각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채우는 바람에 명상이 더욱 어려워진다.
다음날 오후가 되면 종료되는 프로그램. 짧지만 무엇을 느꼈는지 자유롭게 소회를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는데, 어렵고 불편한 것이 가장 먼저 느껴진다는 이야길 많이들 한다. 그 와중에 나의 호흡에 집중하고 불편한 자세인 내 몸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신경이 곤두서있다보니 그게 꽤나 거슬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몸이 편한 걷기 명상이나 와식 명상이 명상 자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결국 수련을 하려면 몸의 불편함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스님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6개월 간 매일 수련을 해야 이 불편함이 불편함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란다.
치앙마이에서 경험한 기존과는 다른 순간들. 스님과의 대화, 명상 수련, 몸과 마음을 겸손케 하기 위한 의도적 채식생활 등을 통해 내가 받아들이게 된 건, 너무 허무하게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자존감 높기론 자타공인, 행복하면 그만이잖아 하며 제멋대로 살기에도 도가 튼 나였지만 그런 삶을 사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정말 외향적이다” “배우고 경험하는 걸 좋아하니 대학원엘 진학해봐” “용기있는 사람이다” 라는 발전적 조언과 칭찬을 해주었던 게 사실. 하지만 어느 순간 든 의문들이 있었다. 단기 강의만 찾아다니고 대학원은 가지 않는 것을 과연 ‘배움을 좋아하는 자세’라 할 수 있는가? 나는 여행을 혼자, 많이, 오래 다니기는 하지만 고독한 시간이 더욱 많은데 그렇다면 나는 정말 용기 있고 외향적인 사람인가? 라는 질문들에 나는 늘 속 시원한 답을 못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여행이 끝나갈 즈음 문득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날 감복하게 한 감상은 “나는 배우는 걸 좋아하지만 학교에 진학해 학문을 할 정도로 끈기와 열정이 없어” “나는 돌아다니는 건 좋아하지만 그냥 세상에 재밌는게 많아서이지 뭔가를 배우거나 깨달으려 한 것도 아니고, 용기가 있어서도 아니야”였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는 실제의 나와는 거리가 있는데 나는 가끔 그 칭찬들(=기분 좋은 오해)에 우쭐해하며 살아왔던 거다. 심지어 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으며, 그런 노력을 할 만한 종류의 사람도 아닌 것이다. 그냥 그걸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말도 못하게, 너무나 편안해졌다.
혼행 10년 차, 최초로 깨달음을 얻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