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여행자지만 거주자의 바이브를 느껴!
여행자는 사실 거주자가 되길 소망한다
얼마 전, 비엔나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곧 아시아 여행을 할 계획인데, 꼭 제주와 서울을 들르겠단다. 그러면서 덧붙인 이 말.
I would love to go somewhere where locals go!
여행자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은 곳엘 꼭 가고 싶다며 추천을 해달래서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거나 자주 가는 장소 중 추천할만 하면서도, 외국인보다 한국인이 많은 곳이 과연 어디일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종종 가는 미술관 하나와, 그 옆의 카페 두 곳, 그리고 전통 가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 두 곳까지, 총 다섯 군데를 알려주었다. 적어도 내가 갔을 때만큼은 외국인보다 한국인이 많았고, 외국인이 종종 보여도 유럽 쪽보다는 아시안이 더 많았던 것 같아서다.
관광객 밀집 지역의 카페나 식당엔 영어를 잘 하는 서버가 상주하고, 이미 다녀간 많은 이들의 후기를 예습하면 메뉴 선택에 실패할 일도 없고, 무엇보다도 여행자의 효율적인 동선에 딱 맞는 자리에 위치하니 이보다 편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도 여행을 갈 때 흔히 ‘한국인 없는 곳’을 찾길 원하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관광지에 위치한 호텔보단 주택가의 에어비앤비를 선호하며, 우연히 찾은 카페나 식당에 현지인이 가득하다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던가. 여행자들은 사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라도 여행자이기보다는 거주자가 되길 꿈꾸는 지도 모른다.
비엔나의 로컬 플레이스를 찾아서
비엔나에 머무는 동안 적어도 세 곳 정도의 로컬 플레이스를 찾고 싶었다. 물론 목표가 단지 로컬 플레이스라면 찾기는 쉽다. 하지만 그저 그런 장소가 아닌 분위기도 맛도 멋도 있는 괜찮은 곳을 찾고 싶은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비엔나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가서, 지난 두 번의 비엔나 여행 동안엔 가지 못했던 비에니즈 로컬 플레이스를 찾게 된 방법을 공유한다.
1. 현지 모임 활용하기
나는 Meet-up 어플을 활용해 현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비엔나는 모임의 수가 많고, 내가 참여한 모임들은 모두 매우 활발하고 지속적인 교류가 이어지는 곳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오래된 사람들의 경우 비엔나 거주 오스트리안이거나, 혹은 외국인이더라도 비엔나에 거주한 지 꽤 된 사람들이었다.
첫 모임에서 내게 로컬 플레이스를 추천해준 사람은 오스트리아 지방 도시에서 비엔나로 이주한 지 1년 정도 된 ‘뉴비’였다. 그가 추천해준 곳은 여행자들에게도 꽤 알려진 곳인 Kahlenberg. 다뉴브 강이 길게 흐르는 비엔나 시내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하지만 비엔나 시내 중심의 관광을 하다보면 약간 거리가 있는 이곳의 정보는 지나치기 쉬울 듯하다. 사실 이 근처의 Leopoldsberg도 함께 추천해주었는데, 조금 더 걷길 원한다면 그쪽으로 가 시내 전경을 보라고 했다.
첫 번째 모임을 통해 매주 금요일의 저녁 모임도 알게 됐다. 사실 대부분 모임의 장소는 관광지는 물론 시내의 주요 거점들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하다 보니 자리 잡기에 수월한 곳들이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지속적인 모임 장소이기 때문에 분위기 역시 편안하고 멋스러웠다.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레 로컬 플레이스 발견으로 이어지곤 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모임 장소는 다뉴브 운하 근처의 야외 펍이었다. 모임 장소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온 순간, 너무나도 자유롭고 편안한 풍경에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운하를 사이에 두고 펍이 여러 개 차려져 있고, 청년들은 벽에 계속해서 그래피티 아트를 하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여름 저녁 바람을 즐기고, 몇몇은 바닥에 자릴 깔고 앉아 맥주를 마시고, 하루가 저물기 시작하면 알록달록한 벽화와 초록의 자연 위로 스며드는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
모임에 다녀온 이후 다뉴브 운하에 대한 여행 정보를 검색해보니 이곳 역시 중심가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지는 않는 듯했다. 그리고 대부분 추천하는 스팟은 프라터 놀이공원 근처의 donaumarina 역 부근. 하지만 조금 덜 붐비는 로컬 스팟을 소개한다. 비엔나의 다뉴브 운하 근처에서 맥주 한 잔하며 현지인들이 퇴근 후 저녁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roßauer lände 역에 내려보시길. 역에서 나오면 당장 마주하는 휑한 모습에 약간 당황할 수 있지만 조금만 걷다 보면 사진 속 풍경들이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그리고 작은 펍 하나가 운하 옆에 자리한 것을 볼 수 있고, 계단을 오르면 운하를 더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펍이 3개 정도 더 있다.
2. 눈알 굴리는 구글 맵 탐방
구글 맵 활용을 하며 갈수록 참 여행하기 좋은 시대라는 걸 몇 번이고 실감한다. 지독한 길치에 방향치인 내가 맹신하는 구글 맵은 로컬 플레이스 찾기에도 매우 유용하다.
관심 키워드 - 카페, 바, 레스토랑 등 -를 선택하면 내 주변의 장소들부터 촤르륵 리스트가 만들어지는데, 각 가게의 이름을 클릭하면 사진과 리뷰까지 뜨곤 한다. 그것을 보며 대략적인 분위기를 예측해볼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어 리뷰가 있을 시엔 그것을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다른 모든 리뷰가 어떤 언어로 적힌 것인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장소가 여행자에게 인기가 있는지 현지인에게 인기가 있는지 파악하기에도 용이하다.
그렇게 찾은 곳은 여름에만 여는 야외 옥상 영화관이었다. 옥상에 자리한 간이 펍과 성기게 배치된 나무의자들, 무드를 더해주는 작은 알전구들까지 너무나 귀여웠던 공간. 하지만 일주일의 절반 이상은 독일어 영화를 상영하는 통에 상영 스케줄을 미리 체크해야 했다. 홈페이지 상에 안내가 되어있지 않아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영어 영화는 독일어 자막에 원어로 상영. 실제로 가본 건 두 번인데, 나와 동행인들을 제외하곤 두 번 모두 독일어 쓰는 사람들만 본 것 같다. 진정한 로컬 플레이스 같아서, 혼자 방문해본 후에 모임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과 재방문했던 곳이다.
3. 발로 뛰는 동네 탐방
하지만 무엇보다도 즐거운 발견은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장소가 아니던가.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독일어 메뉴만 있는 현지인들의 인기 비에니즈 카페들도 그런 식으로 찾게된 곳들이다.
집 안에 작업 공간을 만들어놓긴 했지만 냉방시설의 부재로 자주 책이나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찾곤 했는데, 이 역시 결과적으론 발로 뛰는 동네 탐방이었던 셈이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내가 선택한 그 장소
사실 현지인이 많든 적든 내가 가서 즐거웠다면 그만이다. 꼭 남들이 잘 모르는 비밀의 장소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왜 나는 여전히 지난 두 번의 비엔나 여행에선 알지 못했던, 현지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던 장소들에 애착을 갖는가. 그건 바로 어느 누구도 아닌 “오롯이 내가 찾고 내가 선택한 곳”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가이드북이나 여행 정보 어플을 통해 추려진 정보 중 무엇을 고르기보다, 백지 상태에서 찾아내고 맞닥뜨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우연히 마주친 공간의 출입문 앞에서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던 순간들이 조금은 아쉽다. 다음번엔 좀 더 용기내어 발을 안으로 내딛자 다짐하며. 그 한 발자국이 나에게 그 어디보다 멋진 로컬 플레이스를 만나게 해주는 한 걸음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