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그냥 그런 일상

ep7. 비엔나 한 달 살기 마무리

by 양탕국

비엔나에 짐도 풀고 여독도 풀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3주 간 이 도시 저 도시 바꿔 가며 여행을 하다 온 탓이었다. 여행을 하며 가장 피곤한 건 숙소가 계속해서 바뀌는 일이다. 그 피로감 때문에 더 이상 긴 여행을 하는 게 힘들어지겠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러니 한 달을 머물 숙소는 첫인상부터 좋을 수밖에!


동네를 벗어난 외출을 한 건 비엔나에 도착한 지 사흘이 지나서였다. 며칠에 한 번 꼴로 도시를 옮겨 다니며 여행을 할 때에도 부지런을 떠는 편은 아니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해가 가장 뜨거울 때 집을 나섰다. 한 달 치 교통권을 끊었는데 아뿔싸, 비엔나의 한 달 이용권은 결제한 날로부터 한 달이 아닌 매월 1일부터 마지막 날까지란다. 나는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머무는데, 8월 이용권을 덜컥 구입해버린 것이다. 고객센터에 가서 환불 요청도 해보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단다. 기껏 하는 말이 7월 이용권으로 교환은 해줄 수 있다는 건데, 50유로를 내고 1주일만 이용하는 셈이다. 그건 됐다고 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처음부터 돈지* 수준이 보통이 아니구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첫 행선지는 뮤지엄 콰르티에. 세 개의 미술관이 옹기종기 한 곳에 모여있다.

보랏빛 의자에 누워 일광욕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 곳에 유명 미술관이 나란히 줄지어있으니, 미술관 방문을 좋아하는 여행객에겐 반가운 장소다. 이동 시간과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하루 일정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예전 두 번의 비엔나 방문 때처럼 일주일 정도 머무는 여행자였다면 세 개의 미술관을 아침부터 도장깨기 하듯 차례로 둘러보았을 것이다. 사실 두 곳 정도는 한방에 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두 시간가량을 보내고 나니 허기가 진다. 앞으로 한 달이 더 있는데, 꼭 지금 갈 필욘 없다.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면 자리는 많지만 너무 볕이 뜨겁다.

뮤지엄 콰르티에에서 일직선으로 15분가량 걸어 내려오니 시청사가 나온다. 여름 두 달 동안 비엔나에선 클래식 공연을 볼 수 없다. 그 허기는 시청사의 필름 페스티벌이 달래준다. 매일 밤 8시 반부터 주로 클래식 공연의 영상을 상영한다. 오후 5시경 도착하니 이제 막 음식을 팔기 시작한 듯하다. 해산물은 집에서 해 먹기 쉽지 않으니, 동남아식 쌀에 새우볶음을 얹어 파는 음식과 맥주 한 잔을 사고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피크 시간에 비해 자리는 여유롭지만 유럽에도 찾아온 이상 고온 현상이 한창인 한여름 식사 장소론 적당치 않다. 먹는 내내 등이 따가웠다.

언제 봐도 웅장한 아름다움.

관광객 밀집거리인 슈테판 플라츠도 들른다. 입장 허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냉큼 들어간다. 딱히 따르는 종교는 없지만 불교 국가에 가면 절을 올리며 기도를 하고, 유럽여행을 할 땐 도시의 성당들에 들러 초를 켜고 기도한다. 지난 2017년 3달간 유럽을 여행할 때 족히 50유로는 되는 돈을 성당에 기도 값으로 내고도 소매치기를 당하고, 하나 남은 카드 마그네틱이 손상돼 낭패에 빠진 적도 있지만 속는 셈 치고 또 돈을 내고 초를 켠다. 비엔나에서 무탈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의 내용은 이게 전부다.


별 것 아닌 이런 일상들이 한 달 동안 이어졌다. 날은 점점 더워졌고 나는 점점 게을러졌기에, 어느 날은 아침 10시에 눈을 떠 간단히 아침을 차려먹은 후 그저 빈둥대다 어둠을 맞는 날도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바람에 하루 종일 게으름뱅이처럼 지내다 급 연락을 받고 뱀파이어처럼 저녁이 되어서야 외출하는 날도 늘어갔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가는 날에도 유럽발 공대 도비들과의 전날 번개모임 때문에 숙취로 골골대며 기차를 탔다. 랩실에만 있다더니, 그래도 20대의 체력이란 당해낼 수가 없다.


숙취해소의 낮. 공연이 끝난 후의 밤. /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 축제는 봄부터 티켓을 예매하고 너무나 기다렸지만, 이 날이 왔다는 건 비엔나를 떠나는 날이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8월 13일에 비엔나에 도착하면 그로부터 이틀 후 비엔나를 떠나야 한다.

미세먼지 없는 잘츠부르크의 맑은 하늘.

도착한 날엔 비도 오고 음침하더니, 떠나는 날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을 떼는 날씨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곤 기차 시간까지 노천 식당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비엔나에서 맞는 마지막 여유로운 아침이다. 내일은 공항에 가야 하니 얼른 집을 나서야 하는데... 그 말인즉슨, 오늘 청소와 빨래와 짐 싸기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뜻. 늘 그랬듯 오전 10시경 눈을 떴지만 창문만 열곤 다시 눕는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집이다 보니 더위는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식히는 수밖에 없다.

남아있는 식재료로 냉장고 파먹기만 한 지 일주일째. 늘 달걀 프라이가 예쁘게 안 돼서 한국의 코팅 팬이 그리웠더랬다.

한 달 동안 머물렀던 비엔나의 집

떠나는 날 아침. 호스트에게 떠난다고 메시지를 남기기 직전에 사진을 찍었다. 창가에 마련했던 ‘작업 공간’도, 이색 저색 바꿔가며 마시는 재미를 위해 쪼르륵 줄 세워뒀던 커피 캡슐도 치워버린 공간을 보며 어찌나 허무하고 낯설던지. 애초에 이곳도 그저 여행객의 공간이었을 뿐인데, 몇 주 더 머물렀다고 정이 들 줄이야.

지독한 길치인 탓에 고작 역에서 10분 거리인데도 매번 지도를 보며 돌아오던 동네. 2주는 지나서야 지도 없이 호기롭게 길을 나섰던 게 아직도 선연하다. 사실은 지금도 비엔나 서역에 도착하면, 이곳만큼은 지도 없이 찾아갈 수 있을 거다. 다음에 비엔나를 가게 되고 다른 곳에 묵게 된대도 괜스레 서역 근처에 가게 되면 기웃댈 것 같은, 그 거리의 마트에서 물 한 병이라도 사 갖고 오고 싶은 그런 동네가 생겼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엔나의 로컬 플레이스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