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의 집 방문기
1994년 런던 소더비 경매장. 베토벤의 머리카락 한 줌이 3600파운드에 낙찰되었다. 은발의 곱슬머리카락은 아이라 브릴리언트와 체 게바라라는 이름의 두 미국인의 소유가 되었는데, 이들은 이것을 단지 보관을 위해서가 아닌, 연구를 위해 일부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베토벤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진공 상태로 보관되었던 머리카락은 수많은 취재진들 앞에서 세상에 공개되었고, 이후 미국의 연구소에 전달되었다.
베토벤은 200여년 전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매독에 걸려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그는 끊임없이 진행된 치료에도 날이 갈수록 신경질적이며 괴팍해졌고, 때문에 점점 세상과 멀어져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베토벤 본인은 자신이 매독 환자로 여겨지는 것에 매우 불쾌해 했고 자신의 병은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매독 때문에 정신질환까지 생겨 가뜩이나 고약한 성격이 더욱 나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그는 "내가 죽은 후, 부검을 통해서라도 사인을 밝혀달라"고 했을까.
비엔나 시내 중심가에서 대중교통 기준 30여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베토벤 박물관. 일명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의 집'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앞서 언급한 베토벤의 머리카락은 물론, 그가 난청으로 고통받던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매월 첫째주 일요일은 입장료가 무료라고 해서 비엔나에 머문 지 몇 주가 지난 뒤에야 방문하게 됐다. 시내 중심가에선 꽤 떨어진 곳이어서인지, 트램에서 내려 베토벤 박물관으로 걸어가는 길은 매우 한적했다.
주소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냥 누군가의 집이겠거니 하고 지나칠 만한 건물. 고즈넉한 작은 집은 박물관으로 재정비되며 방마다 하나씩의 번호를 갖게 됐다. 방문객은 1번부터 6번까지의 공간을 차례대로 살펴보며 베토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크지 않은 박물관이지만 베토벤의 음악과 영상은 물론, 그가 사용했던 도구들이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도 가늠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물이 많았다. 그 중 다른 작곡가들의 박물관에선 볼 수 없었던 물건, 바로 난청으로 고통 받던 베토벤이 작곡을 위해 사용한 각종 도구들이었다. 청각이 약해져 이마의 울림을 통해 소리를 들었다거나, 팔보다 긴 국자 모양의 관을 보청기 삼아 소리를 듣는 등, 작곡은 커녕 일상생활을 하기에도 매우 불편하고 번잡스러운 물건들이 여럿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베토벤은 청각 상실로 인한 고통에만 시달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원인이 정확하지 않은 어떤 질병에 의해 나날이 허약해졌고, 신경과민과 복통, 어지러움, 두통, 간경화 등 각종 증상을 동반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원래 성격이 고약한 베토벤이 병에 걸려 점점 미쳐가고 있다고 손가락질까지 해댔다. 당시의 고통은 베토벤이 비엔나의 교외마을인 하일리겐슈타트에 머물며 남긴 글에 잘 나타나 있다.
너희들은 내가 적의에 차고 고집스럽고 사람들을 혐오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겉으론 그렇게 보이겠지만, 진짜 원인을 너희는 모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마음과 영혼은 따뜻함으로 가득차 있었고, 나는 그 위대한 것을 발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말야.
-
지난 6년 동안 난 희망 없는 불치병에 시달렸고, 분별없는 의사들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지.
-
다른 사람들보다 더 완벽해야할 감각이 병들었다는 걸 인정하는게 어떻게 가능할까. 내 옆에 선 사람은 멀리서 들려오는 플루트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난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그들은 양치기의 노래를 듣지만 난 역시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그게 내가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지 아니. 그럴 때면 나는 깊은 절망에 빠지고, 내 삶을 끝내고 싶은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 절망에서 나를 다시 삶으로 돌려놓는 건 오직 예술 뿐이다.
베토벤은 이 글을 동생과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작성했지만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은 채로 간직했다. 대신 글에 적은 것처럼 자신을 살게 하는 유일한 이유인 음악에 더욱 몰두했고, 이 글을 쓴 이후로도 25년을 더 살았으며, 수많은 곡을 남겼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는 놀라웠다. 그의 머리카락에선 일반인의 100배에 달하는 납 성분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중추신경계 손상에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중추신경계 손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 증상 중 하나가 바로 분노 조절이 되지 않는 등의 성격적인 문제. 더군다나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는 당시 매독 치료제의 성분인 수은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즉, 매독에 걸려 괴팍하고 고약해졌다는 항간의 소문은 오해였다. 베토벤 본인의 말처럼 다른 신체적 질병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그가 사망한지 200년도 더 넘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결국 베토벤은 오랜 세월 수많은 치료를 병행하면서 어떤 효과도 보지 못했고, 각종 병증과 고통, 거기에 세상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까지 그대로 감내하며 음악에 전념했던 것이다. 참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으리라.
베토벤 박물관은 낮 12시부터 1시까지 1시간 동안 문을 닫는다. 마침 모든 방을 둘러보고 나자 직원이 출입문을 닫고 새로운 방문객에게 지금은 쉬는 시간이라는 안내를 하는 참이었다. 각 방에 마련된 음악과 영상도 좀 더 여유있게 감상하며 다시금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기에 떠나는 걸음이 아쉽기도 했지만, 예술가의 고통을 마주한 후 그 장소를 떠나는 일은 유독 다른 곳보다 헛헛함이 크다. 사실 어떤 죄책감도 든다.
언젠가 방문했던 반 고흐의 묘지를 떠나기 전 그랬듯 나는 베토벤 박물관의 닫힌 문 앞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
후세엔 더없을 예술혼과 아름다움으로 미화되는 예술가의 업적이 당시의 그들에겐 현실의 고통이었음을 우린 종종 잊는다. 그 고통과 마주하는 순간에도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발판이었다고 가볍게 평하기도 한다. 그 안일함에 자책한다. 하지만 나는 또 어느 예술가의 고통을 그의 아름다움으로 해석하겠지. 찬란한 숭고함으로 기억하는 일이 그들을 기리는 한 방법이라고 안일함 한 스푼을 다시 타넣으면서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