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는 나의 (제대로 된) 첫 장래희망직업이었다. 물론 오빠의 희망을 따라 과학자가 되겠다고도, 상냥하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을 보고 음악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때와 달리 만화가는 꽤 오래 고민하고 상당히 많은 열정을 쏟은 후 결정한 결과였다. 순간의 호기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화방을 아무리 다녀도, 용돈을 쪼개 수시로 만화책을 사모아도, 딸의 꿈에 투자하라며 아빠를 종용해 값비싼 도구를 사들여도, 코피를 흘릴 정도로 잠을 안 자고 그림을 그려도 내 맘대로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칭찬만 먹고 자란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우물 밖으로 다리 하나를 내놓게 된 일이었다. 세상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능력엔 한계가 있었다. 좌절과 함께 깨달았다. 세상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교사가 되고 싶어 퇴사했다. 임용고시를 통과해 공립학교에 부임했지만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일념으로 사립학교로 옮겼다. 우리와 띠동갑인 선생님은 젊은 만큼 열정적이었다. 잔소리는 많았지만 챙겨주는 것도 월등했다. 당시 1학년 학생들은 고작 몇 시간 짜리 답안 작성을 통해 나에게 맞는 직업을 알 수 있다는 적성검사를 치렀는데, 선생님은 다른 반과는 달리 검사 상담도 두 시간씩이나 해주는 다정한 분이었다.
시간은 한참 흘러 36번이던 내 차례. 선생님은 중학생 때보다 현격히 떨어진 성적과, 좋은 것에만 집중하고 싫은 것은 무시하는 성향을 염려했다.
- 좋아하는 게 뭐야?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어?
- 만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노력해도 안 되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어요. 만화 스토리 작가라든지...
그때 나는 노력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난감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걸 처음 알게 된 때였다. 그나마 찾은 일이 만화와 관계가 있는 만화 스토리 작가였고, 틈틈이 글을 끄적이며 흥미를 붙여가는 중이었다.
- 나는 네가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 만화를 그릴 때보다는 아무래도...
- 내가 보기엔 만화도 네가 노력을 다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천계영이라는 만화가 알지? 그 사람은 그림을 그리다가 손목이 마비된 적이 있었대.
아.
-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했는데 고등학교 와서 처음 본 시험에서 전교 10등을 했어. 다음 시험엔 반드시 1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밤새워가며 공부했거든. 그리고 기말고사에서 몇 등 했게?
다시 1등을 한 17살의 선생님은 노력은 빛을 발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선생님의 인생은 그랬다.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갔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대기업도 갔다. 교사가 되고 싶어 다시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노력하면 늘 원하는 결과를 볼 수 있었던 선생님에게, 손이 마비될 정도로 그림을 그리지 않은 나는,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지 못한 나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선생님의 여정은 대단했다. 선생님이 내게 한 말의 의도도 곡해하진 않는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한 지난 시간을 통째로 부정당했단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두 시간 여의 상담을 끝내고 홀로 걸어가던 어두운 하굣길, 문득 체감한 것 같다. 노력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함부로 남의 노력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봄, 나는 한 지방 대학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 그 이후로 날개 돋친 듯 상을 타기 시작했고, 유명 대회의 상도 거머쥐었다. 그때의 내가 만화를 그릴 때보다 더 노력했는지는 아리송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곧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 대회에 떨어져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고, 보완을 위해 애썼다. 글쓰기는 너무 재미있었고, 계속해서 글감이 생각났으니까.
공부만을 강요했던 분위기의 학교에서는 내가 마치 엄청난 신기술로 양산해낸 돌연변이라도 되는 듯 대했다. 백일장 수상작은 학교 통신문에 실어주고,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뜬금없이 이름을 불러 칭찬한다거나, 모르는 선생님들이 글을 잘 읽었다며 후기를 전하곤 했다. 넘치는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만약 남들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더라면, 그때도 내 노력은 그저 발버둥이거나 혹은 알량한 자부심으로 치부됐을까?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동료 교사와 결혼했단 이유로 같은 재단의 중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고3을 코앞에 둔 어느 겨울날, 친구들과 나는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여전히 다정했다. 방학 동안 공부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었고, 정신 건강을 지키는 법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매번 수상 소식을 듣고 있다고, 열심히 하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그 날 나는 선생님께 내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잠시 우쭐했다. 드디어 뭔가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내 흐뭇하거나 뿌듯하지는 않았다. 사실은 상담을 받았던 그 날에도, 선생님을 찾아간 1년 후 그 날에도 말하고 싶은 게 있었다. 만화를 그릴 때도 글을 쓸 때도 나는 내 할 만큼 했을 뿐이라고. 성과로 노력을 재단당한 건 꽤나 상처였다고 말이다.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나는 종종 상담을 받고 돌아가던 그날의 하굣길을 떠올린다. 다시 선생님을 뵙게 되면 내가 느꼈던 걸 얘기하는 상상도 한다. “세상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어요. 성공을 위한 조언도 훌륭하지만, 그게 항상 해답이 되진 못해요” 그렇게 말하는 내 모습을. 물론, 그런 기회는 영영 오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