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기심과 두려움이 만든 거대한 지옥

by 양탕국


수도 콜롬보에서 두 밤을 자고 다시 배낭을 꾸렸다. 다음 행선지는 콜롬보에서 차로 네 다섯 시간 거리인 담불라Dambulla.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스리랑카 여행을 하면 대표적으로 들르게 되는 곳들이다. 공항을 이용하려면 콜롬보나 네곰보로 가야 하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보통 스리랑카 여행은 시계 방향 혹은 반시계 방향으로 진행된다.


담불라에 가는 이유는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도 불리는 시기리야 때문이다. 5세기에 스리랑카를 집권한 카사파 1세가 지은 거대한 요새이자 성이다. 지금은 뼈대만 남아있는 고대 도시의 흔적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캔디Kandy에서 당일치기로 다녀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만, 나는 담불라에 이틀 머무르기로 했다. 참고로 캔디에서 시기리야를 가는 데엔 차로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담불라에서 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담불라는 굳이 머물렀다 가는 도시는 아니기 때문에 숙박 시설이 호텔이 아니라면 거의 가정집 민박 같은 곳들이다. 내가 머문 곳은 ‘디즈니 빌리지’라는 곳으로, 독채를 이용할 수가 있고 저렴한 값에 편히 머물 수 있다. 2016년 여름 방문했을 때 한창 방 두 개를 더 짓는다고 공사중이었으니 지금은 독채가 총 4개일 듯. 주인 아저씨가 가구를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영어는 조금 서툴지만 대화를 하려고 꾸준히 시도하시고, 친절하다. 밥도 많이 준다! (다만 스리랑카 특유의 면 요리가 맛있었다고 하니 그날 저녁부터 그것만 매일 준 건 좀 힘들었다ㅠ)


다음날 아침부터 찾아간 시기리야. 저 우뚝 솟은 화강암 덩어리가 그 시기리야다. 수많은 계단을 밟아야 저 위에까지 오를 수 있는데 그 계단의 갯수가 자그마치 1222개란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가이드 자격증이 있다면서 보여준다. 원래 그런 것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혼자 구경하는 편인데 주변 다른 여행자들이 다들 가이드를 즉시채용(;)하길래 나도 현지 가이드 한 분과 함께했다. 당시 가격으로 5천 루피 정도 줬던 것 같다. (우리나라 돈 4-5만원 정도) 결정적으로 혼자 여행자인 데다, 시기리야 정보도 잘 모르고 온 것이어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여기는 거의 마지막 관문. 저 발톱 바위를 오르면

까마득하게 펼쳐진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카사파 1세는 왜 이 높은 곳에 벽을 쌓고 도시를 만든 걸까. 그는 아버지를 산 채로 묻어버리고 왕위를 찬탈했는데, 극악무도한 패륜을 저지른 그는 엄청난 피해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이 순수 왕족 혈통이 아니라는 것 때문.

동생은 왕족이지만 본인은 평민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늘 자격지심에 시달렸고, 동생을 살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급기야 형제들을 인도로 내쫓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무서웠는지 이 높은 곳에 성을 만들고 자신의 몸을 숨기고 살았다.

이 곳에서 카사파 1세는 매우 안락한 삶을 누렸다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뒷받침됐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 직접 올라와 보니 알겠다. 이건 인간의 이기심과 두려움이 만든 거대한 지옥이다.


정상에 오른 후 한 돌판 주변에 사람들 몇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사진을 찍는 것을 보았는데,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그 돌이 여기선 마지막 계단으로 치는 돌이란다. 1222개를 올랐다 야호! 하는 상징성 있는 돌이라고.


8월의 스리랑카, 한낮의 시간에 꾸역꾸역 1222개의 계단을 올랐던 그 날의 기록. 영상으로 살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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