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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Sep 03. 2019

결혼, 하든 안 하든

<위기의 30대 여자들>


올해 7월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43.5%로, 2년 전에 비하면 4.1%가, 10년 전에 비하면 무려 18.1%가 하락했다. 여성들은 점점 결혼에 대한 강박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시 보면 43.5%, 즉 여성 중 절반 정도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성 수치(52.8%)는 이보다 10% 정도 높았는데,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절반은 결혼을 ‘우리 생에 꼭 해야 할’ 일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결혼을 주제로 한 대화엔 으레 나이 이야기가 따라온다. 그렇다면 실제로 혼인 연령은 어떨까. 2019년 남성 초혼은 33.2세, 여성 초혼은 30.4세로, 각각 지난해에 비해 0.2세씩 올랐다. 또한 전년 대비 남성은 30대 초반에 결혼하는 사람이, 여성은 20대 후반에 결혼하는 사람이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물론 혼인신고 기준이니, 어느 정도 오차는 있을 것이다.)


결혼을 원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이 모든 수치를 우린 주변의 일들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조바심을 느끼거나 안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전혀 상관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거나 무엇이 더 행복하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기에, 여전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절반과 아니라는 절반 사이에선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몰라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할 다큐멘터리는 중국의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위기의 30대 여자들>이다.



[위기의 30대 여자들. Leftover women. 2019]

중국엔 ‘성뉘’, 즉 ‘남은 여자들’이라는 말이 있다. 27세 이상의 결혼하지 못한 고학력 전문직 여성이란 뜻이다.


여기, ‘성뉘’ 세 사람이 있다.

1) 추화메이. 34세 변호사

2) 쉬민. 28세 라디오 진행자

3) 가이치. 36세 영화방송학과 교수


이들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추화메이는 스스로 눈이 높다고 말하지만, 그가 원하는 남자는 자신의 일을 존중해주며 집안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쉬민은 데이팅 사이트를 구경하는데, 처음엔 아무 조건 없이 사이트에 뜬 남자들의 사진을 보다가 점점 키와 직업, 출신 지역 등 여러 조건을 제한적으로 입력, 검색하며 남자를 찾는다. 하지만 이렇다 할 남자를 찾는 일은 요원하다. 가이치는 연하인 남자 친구가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결혼은 개인만의 일이 아닌 양가의 결합이기에 신중해야 하는데, 그는 젊은 나이에 병에 걸린 아버지로 인해 남들이 결혼하는 나이에 똑같이 결혼 생각을 하기엔 삶이 꽤 바빴던 것 같다. 각자의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이들은 27세를 넘은 나이에도 미혼이기에 ‘남은 여자들’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세 여자 중 집중 조명되는 사람은 추화메이다. 실제로 그는 결혼을 위해 가장 노력하는 것 같다. 정부가 주관하는 소개팅 행사 (중국 정부는 여성들이 27세 이전에 결혼하기를 권장한다고.)에도 나가고, 공원에 한가득 늘어선 중매 정보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결혼 정보회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이도 저도 시원치 않으니 병원에 가 출산과 난자 냉동에 대해 문의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녹록지 않다. 결혼 정보회사에선 “당신은 예쁜 편이 아니”라며 눈을 낮추라고 하질 않나, 기껏 만난 소개팅남은 “집안 주도권은 내가 갖겠다”며 거침없이 가부장적 발언을 하고, 공원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변호사라니, 가족 간 문제가 있을 때 법을 들먹이는 것 아니냐”며 변호사인 추화메이가 며느리로는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난자 냉동이 되느냐, 그건 또 불법이란다. 오랜만에 찾은 가족들은 결혼하지 않은 추화메이를 후려치기 바쁘다. “공부를 많이 했더니 눈만 높아졌다”, “딸 시집 못 보냈다고 손가락질당한다”며 그를 몰아세운다.


하지만 진짜 자신이 결혼을 원하는지 가장 많이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 역시 추화메이다. 또한 친구들과 대화하며 ‘부모님의 걱정을 덜기 위해 결혼을 생각한다’고 하거나, 부모님과 언성을 높일 때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하거나, 수없이 이어지는 결혼 압박과 급기야는 스스로  결혼 상대를 찾아 나서는 중에도 ‘내 일을 존중하고 집안일을 같이 하는 남자’를 남편감의 조건으로 늘 앞세우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주관이 뚜렷한 지도 알 수 있다.

결혼하려면 이 중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집안일은 당연히 내 몫이고, 원치 않는 아이를 낳기 위해 노력하면서까지 결혼을 하는 일.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만 하면 과연 모든 게 다 잘 되는 일일까?


끝없이 고민하던 추화메이의 선택은 유학이다. 그는 더 이상 ‘남은 여자들’이라는 말에 발목 잡히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실 이미 그 단어에서 벗어났지만, 중국 사회에선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보지 않기에, 일단 ‘탈중’을 택한 것이다.

가족에게 후려침 당한 후 울던 추화메이 (왼), 프랑스 유학생이 된 추화메이 (오) / 이미지 출처: <위기의 30대 여자들>


가장 나이가 많은 ‘성뉘’였던 가이치는 결혼을 한다. 결혼하기엔 안정적이지 않은 환경이 걸림돌이었지만, 그런 것들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기꺼이 이야기하는 연하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하고, 거기다 아이를 키우기에 돈이 덜 든다는 남편의 말에 광저우로 이직도 감행한다.


사회에서 억압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를 감상한 후, 영화 소개자인 가이치와 상영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진다. 누군가 묻는다. “어떻게 페미니즘과 결혼이 공존할 수 있나요?” 이에 대한 가이치의 대답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 자리를 비우지 않은 채로 존재하라”는 것이다. 20대엔 집을 갖고 있고 자신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단 생각을 했고, 30대를 넘어서며 조건을 고수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했고, 이후 자신과는 달리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게 됐고, 그 남자가 원해서 아이를 낳고, 그 남자의 제안으로 지역을 옮겨 이직을 하게 됐다는 가이치. 결혼 전과 많은 게 바뀌었지만 가이치라는 사람 자체가 바뀐 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그렇다면 결혼이 성공이라는 이야기인가요?” 라며 이어진 질문에 대한 가이치의 답은 이렇다. “결혼 전 인생은 너무나 재밌었고, 결혼 후 인생은 사실 재미없고 지루하기까지 하다. 내 삶을 영위하며 결혼도 하기 위해 포기한 것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얻는 행복이 크기 때문에 현재의 나는 만족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남은 여자들’로 중국에 살고 (쉬먼), 누군가는 그 단어가 옭아매는 갑갑함이 싫어 나라를 떠났고 (추화메이), 누군가는 더 이상 ‘남은 여자들’이 아니게 됐다 (가이치). 각자 다른 여성들의 선택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거나 혹은 누가 더 행복할 것인지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결혼, 꼭 해야 할까?’에 대해 답하는 건 ‘사람들은 보통 이때쯤이면~’을 보여주는 통계도, 사회가 내게 낙인찍은 ‘노처녀’라는 말도, 미래의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에 대한 효도심도 아니다. 다소 이기적일지라도 오로지 나의 행복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 결국 가장 행복에 가까운 길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조건도 없이 오로지 나만 생각해서 결정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결혼을 함으로써 그 모든 ‘결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순 있는 걸까?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난 후 든 생각은 그렇다. 결혼, 했든 안 했든 이 여성들은 앞으로 계속 결혼을 두고 갈등할 거라는 것. 어쩌면 싸워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특히 추화메이가 많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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