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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Sep 14. 2019

내 몸 하나 뉘일 곳 어디에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연희동,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이 장소들의 공통점은? 바로 근 몇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 사례로 알려진 곳들이기도 하다.

그중 최근 가장 주목받은 곳은 이태원 경리단길인데, 이미 2015년 경부터 비싼 임대료와 매매가 문제로 언론 보도가 되곤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2010년엔 평당 매매가가 3108만 원이었는데, 2013년 언론 노출 빈도가 급격히 높아진 후 그 이듬해인 2014년 평당 매매가가 5426만 원까지 올랐단다. 평당 임대료 역시 22%가 올라 그걸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경리단길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애초에 경리단길이 이태원역 주변의 비싼 임대료와 지가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곳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의 공간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돈 없는 사람들만 끊임없이 짐을 꾸려 새로운 터를 잡아야 하는 상황, 도대체 왜 일어나는 걸까? 이 악순환을 끊을 순 없는 걸까?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Push. 2019]

칠레 최대 항구도시인 발파라이소. 이곳 주민들은 걱정이 많다. 동네에 있던 병원을 철거하고 올리브, 아몬드 나무를 밀어낸 자리에 고급 콘도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입주한 사람보다 공실이 훨씬 많아 텅텅 빈 콘도는 왜 한적한 지방 도시에 들어선 걸까. 아마 이 건물을 별장으로 쓰든 세를 놓든 혹은 자산 불리기든... 어떤 이유로든 이걸 원하는, 그리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발파라이소 주민들은 동네의 편의 시설과 아름다운 자연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겐 어느 날 갑자기 동네 부지를 사들여 건물을 짓는 기업을 막을 힘이 없다. 콘도가 더 지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들은 떠나야 할 것이다. 오랜 세월 살던 터전에 하나둘씩 지어지는 콘도를 구입할 돈이 없어서다. 돈 없음은 곧 무력함을 뜻한다.

저소득층의 주택가를 부유층이 집어삼켜버리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이 이 지역을 강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도시 이론 연구의 권위자인 컬럼비아대학의 사스키아 사센 교수는 차라리 젠트리피케이션은 양호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지금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는 이미 그 현상을 넘어 금융(돈)이 사람들의 기본권까지 잃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다큐는 UN 주거보장 특별보고관인 레이라니 파르하의 동선을 좇는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주택 문제를 조사해 점점 심각해지는 ‘집 없음’ 문제를 세계에 알리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레이라니 파르하가 찾은 곳은 캐나다 토론토. 바퀴벌레와 쥐까지 출몰하는 잔뜩 낡은 집에 사는 이들은 집세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세입자가 왜 임대료를 안 내겠다고 하는가 보니, 새로 그 건물을 구입한 집주인이 갑자기 임대료를 대폭 올린 탓이다. 집수리도 해주지 않고, 임대료는 올린 만큼 받겠다고 하고. 아마도 집주인은 그들을 내쫓으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낡을 대로 낡은 건물에 살던 세입자들은 갑자기 오른 집세를 낼 형편도 안 될뿐더러, 이 집을 나가면 더 이상 토론토엔 살 수가 없는 처지가 된다.

임금 상승률에 비해 턱없이 높은 토론토 주택 가격 상승률 / 이미지 출처: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일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아니야?’라고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토론토의 주택 가격 상승률은 분명히 이상하다. 지난 30년 간 사람들의 임금은 133%가 올랐는데 집값은 425%가 올랐다. 토론토의 부동산 업자는 말한다. 한 달 만에 20%가 오르기도 한다니까요.



영화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가 서점을 운영하던 런던의 작은 동네 노팅힐도 다르지 않다. 영화로 인해 평범한 주택가였던 노팅힐의 인기가 급부상하자, 부자들이 수천만 파운드를 들여 건물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새 옷을 입혀놓고 높은 임대료를 책정한다. 자연스럽게 기존 주민들은 떠나게 되고, 지금 그곳은 사람 한 명,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런던의 죽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2017년 대형 화재로 72명의 사망자를 내고 전소된 노팅힐 부근의 그렌펠 타워는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공공주택이었다. 그렌펠 타워 입주자들은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었다. 어떤 사람은 호스텔에 살고 있다. 가뜩이나 돈이 없던 그들에게 급격히 임대료가 올라 대표적 부촌이 된 노팅힐은 더 이상 우리 동네가 될 수 없다. 지역 의회 의원은 말한다. 노팅힐에 살 여력이 안 되면 노팅힐을 떠나야 한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수십 년의 시간을 보낸 이들은 묻는다. 왜 내가 쫓겨나야 해?



또 다른 대도시 뉴욕의 할렘가. 대표적인 저소득층 주거 지역인 이곳은 얼마 전 한 기업이 1700여 세대가 거주하는 낡은 건물을 통째로 사들였다. 그리고 매달 내던 임대료에 900달러가 더해졌다. 이미 임금의 90%를 집값으로 내야 했던 세입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칠레 발파라이소, 스웨덴 웁살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베를린... 다큐에 나오는 곳만 해도 이만큼이다. 주택 문제를 조사하는 레이라니 파르하는 기가 차다는 듯 말한다. 도대체 도시에 살 수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이 많은 집을 사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수천 채의 집을 통째로 구매하는 큰 손은 바로 기업, 더 정확히는 금융회사다. 뉴욕 할렘가의 아파트를 구매한 회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모펀드 사인 블랙스톤이다. 이 회사는 2014년 스웨덴에 진출해 이런 식으로 건물을 사들였고, 2018년엔 스웨덴에서 가장 많은 저소득자용 주택을 소유하게 됐다. 그들이 벌이는 일은 투자자를 끌어들여 새롭게 단장한 집을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집은 누군가의 추억, 역사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깡그리 무시되어도 관계없는 일이다. 오랜 역사의 지역 공동체가 무너져 폐허가 되어도 상관없다. 집은 더 이상 휴식과 안정의 공간이 아닌, 돈만 있으면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에 불과하다.


돈이 많아서 그걸 굴리는 것뿐일까? 그럴 리 없다. 이 모든 돈엔 검은 배후가 드리워져 있다.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금은 줄이고 이득을 챙기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아끼고 불린 돈은 지역 원주민들을 내쫓고 들어온 기업 소유의 거대 프랜차이즈로 흘러들어 가고, 그들의 임대료는 다시 부동산 사모펀드 회사의 배를 불려줄 것이다.



이들의 놀랄 만치 확실한 재산 증식에 혹한 투자자들이 너도 나도 뛰어드는데, 그 어마어마한 투자금액 중 하나가 바로 연기금이다. 국민들이 연금을 받기 위해 나라에 낸 돈이니, 그 금액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만약 그 돈을 부동산을 대량 구매하는 금융회사에 투자한다면? 조세피난처를 거쳐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에 사용한다면?

국민연금 투자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레이라니 파르하 / 이미지 출처: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우리는 이미 많은 원주민들이 그들의 터전에서 내몰린 역사를 알고 있다. 종종 그들은 무차별 철거에 대항하다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그들 중 일부는, 특히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면 추후 연금을 받기 위해 국민연금에 다달이 일정 금액을 납부할 것이다. 그런데 연기금이 부동산을 사들이는 금융회사에 투자된다면, 그 회사들처럼 은밀하게 부동산을 사는 데에 융통된다면 해당 기업의 배를 불리는 것도 모자라 그 결과로 살던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낸 돈이 날 쫓아낸 셈인데, 얼마나 모순적인가.

물론 국민들의 돈을 잘 관리해 그 사이즈를 키워 몇십 년 후 돌려주기 위해 성공률이 높은 투자를 해야 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금융이 부동산을 쥐락펴락하는 세상은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수십 년간 꾸준히 연금을 납입해온 사람들이, 그 연기금 투자의 결과로 인해 집을 잃고 쫓겨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4년, 국민연금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해외 부동산 투자를 해온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럼 우린 로또에라도 당첨되어서 일확천금의 행운을 누리지 않는 이상, 계속 나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면 내 터를 기꺼이 비워주어야 하는 걸까.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넉넉지 않은 이들의 자식들과 또 그다음 세대들은 도시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걸까.


세계의 도시들은 변하고 있다 / 이미지 출처: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다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고 이야기한다. 베를린 시장은 기업에 빼앗기기 전에 토지를 사들여 공공주택용으로 쓰겠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선 전 세계 공용주택을 설파하며 임대료 폭등에 한몫을 하는 에어비앤비에 현재의 주택 문제에 대한 대화를 거부하면 6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시와 지방 연합 등 정치인들이 나서겠다 선언한 도시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우리에게 닥친 일이 아닐지라도 한번 생각해보자. 이 문제를 모른 척 등한시했다가 지금 휴식을 취하는 이곳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내 몸 하나 편히 쉴 곳을 못 찾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지금 자신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도 한땐 그리 되리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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