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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Sep 26. 2019

누가 그 선택에 돌을 던지랴

<하트바운드: 결혼 원정기>


언젠가 뉴스 하나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결혼 중개업체를 통한 동남아 국제결혼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한국인 남성이 동남아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고작 1주일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5G LTE 시대에 걸맞은 초스피드 결혼이랄까.

그런데 이런 양상의 결혼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닌 듯하다. 한때 큰 국제적, 사회적 문제였던 1(외국인 남성) : 다수(동남아 여성)의 중개 방식이나, 인신매매성 결혼을 막기 위해 많은 나라에서 여러 법적 조항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게 바로 ‘속성 결혼’이라고 하니 말이다.


여자가 돈으로 사고파는 재화는 아닌데, 거리를 지나다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을 보고 “어머, 이건 사야 돼!”라며 ‘충동구매’하듯 이뤄지는 결혼이 반복되는 이유는 서로가 원하기 때문이다.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미지수인 오랜 연애 기간을 거치는 게 싫어서, 각자가 원하는 조건을 얼른 따져보고 결혼 가능성을 점치고 싶어서, 더 노골적으로는 어리숙하고 예쁜 외국인 아내를 얻고 싶어서, 가난에서 탈피하고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들은 중개인을 통한 속성 결혼을 원한다.


조건도 어느 정도 부합하고 각자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니 윈-윈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할 것이다. 혹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남성과 달리 돈을 중요시하는 여성의 모습에 환멸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속성 원정 결혼이 그들에겐 삶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면? 사랑이나 꿈이나 미래 따위를 논하는 것도 사치일 만큼 당장의 상황이 깜깜하다면? 극한 상황에서의 선택에 대해 우린 도덕적 가치관을 운운할 수 있을까?



[하트바운드: 결혼 원정기. Heartbound. 2018]


덴마크 북부의 도시 튀. 이곳엔 태국인 900여 명이 거주한다. 덴마크 남자와 결혼한 여성들이 대부분인 이 외국인 공동체를 꾸린 건 이 도시의 첫 태국인 여성인 소마이다. 오래전, 파타야에서 성 노동을 하던 그는 관광객이었던 현 남편을 만나 덴마크로 이주했다. 그 후 소마이는 고향 여성들이 덴마크 남자들과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왔다. 떠나온 마을에서 그는 “남편감을 잘 찾는 소마이”, “그래서 고마운 소마이”다. 실제로 그의 도움으로 결혼 이주에 성공한 여성들은 보다 편안한 삶을 누린다. 고향집에 경제적으로 톡톡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소마이의 고향 마을에선 50만 바트(우리나라 돈 2천만 원 정도)면 동네에서 눈에 띄는 큰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인 남편들은 아내를 위해 기꺼이 그쯤은 지출한다. 그렇게 소마이의 중매로 수백 쌍의 태국인-덴마크인 부부가 탄생한다.


이제 그의 조카 카에 차례다. 소마이는 카에를 위한 ‘남편 구인’을 하고, 곧 멀리 태국에서부터 덴마크까지, 이모인 소마이만 믿고 카에가 날아온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관광 비자 기간인 3개월. 소마이 부부는 ‘남편 지원’을 한 남자들의 능력을 고려해 적합한 후보를 선발한다.

한편, 카에는 걱정이 많다. 덴마크는 그에게 낯설고 불편한 곳이다. 언어, 생김새, 기후, 음식, 문화... 모든 것이 고향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미 덴마크인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한 바싯은 말한다.


- 설명할 순 없지만 가끔 미칠 지경일 때가 있어.
- 대화할 사람은 없어요?
- 프랭크가 퇴근하면 그 사람하고만 얘기하지. 하지만 그이는 피곤해서 바로 잘 때가 많아.


수심 가득한 카에에게 소마이와 다른 여자들은 말한다. 파타야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생각해봐. 너에겐 굉장한 기회가 찾아온 거야.



소마이와 카에의 고향엔 많은 여성들이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운다. 덴마크로 온 소마이와 카에도 그랬고, 고향에 있는 23세 동갑내기 친구인 생과 롬도 그렇다. 가뜩이나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늙어가는 부모와 자라나는 아이를 건사할 사람은 젊은 여자인 생과 롬뿐인데, 그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외국인과 결혼하거나 파타야 윤락 시장에 뛰어드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옵션의 전부다. 롬은 이미 파타야에서 성 노동을 하고 있고, 아직 그곳을 경험하지 않은 생은 소마이를 통해 원정 결혼을 하려고 하지만, 결혼 이주를 하려면 나이가 최소 24세는 되어야 한다. 고작 1년이라기엔 당장 먹고 살 일이 요원하다. 결국 생은 롬처럼 파타야로 향한다.


덴마크인과 결혼한 카에 (위), 파타야 성 노동자가 된 생 (아래) / 이미지 출처: <하트바운드: 결혼 원정기>

각자 다른 선택을 해야 했던 여성들의 미래는 어떨까. 감독은 7년 후 다시 그들을 찾아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담았다. 원정 결혼을 장려한 소마이, 그런 소마이의 도움으로 속성 이주 결혼을 한 카에, 원정 결혼을 꿈꿨지만 파타야로 가야 했던 생, 일찍이 파타야에서 돈을 벌던 롬이 바로 그들이다.


먼저, 소마이 부부는 많이 늙었다. 이젠 결혼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이들은 각자의 노후에 대해 생각한다. 소마이는 늘 나이가 들면 태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고 이제 그걸 실현하고 싶다. 하지만 남편은 소마이가 정말 그럴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아내의 마음을 잘 알지만 덴마크에 남길 바라는 남편과, 늙어가는 남편이 걱정되지만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아내. 그들은 어쩌면 헤어질 준비를 하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고국에서 노후를 맞고픈 소마이 부부 (위), 가정을 꾸려 안락하게 사는 카에 (아래) / 이미지 출처: <하트바운드: 결혼 원정기>


소마이가 주선한 속성 원정 결혼에 성공했던 카에는 덴마크인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도 하나 낳았다. 그리고 태국에 있던 아들도 데려왔다. 남편은 여전히 성실하게 일을 하고 카에 역시 청소일을 하며 돈을 번다. 처음엔 덴마크에 오고 싶지 않았던 카에의 아들은 이제 덴마크에 완벽 적응했다. 직업학교를 졸업해 대도시인 코펜하겐의 레스토랑에 취업도 했다. 좋아하는 여자도 생겼다. 카에의 결혼은 아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이다.

‘성공한 이주 결혼’의 롤모델로 삼아도 될 만한 인생을 꾸려가는 카에. 하지만 당사자의 마음은 어떤지 알 수 없다. 안락하고 평온해 보이는 가정이지만 잘 웃지 않는 카에의 얼굴이 계속 이 말들과 함께 마음에 걸린다. 막 덴마크에 도착한 카에가 자조적으로 물었던 말. 오래 살면 살수록 더 사랑에 빠질 수 있겠죠? 그리고 세월이 흘러 취업 합격 소식을 전화로 듣는 아들을 지그시 바라보다 통화가 끝나자 넌지시 건넨 말. 너 그 여자가 한 말 다 이해했어?


파타야에서 돈을 벌던 생과 롬. 생은 평소 늘 바랐던 대로 핀란드 남자와의 원정 결혼에 성공한다. 성 관광을 온 남자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 20여 년 전 소마이처럼 말이다. 깨끗하고 예쁜 집에서 결혼생활을 하며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을 언제 핀란드로 데려갈까 고민한다.

핀란드인과 결혼해 파타야를 떠난 생 (왼), 그런 생을 부러워하는 롬 (오) / 이미지 출처: <하트바운드: 결혼 원정기>


그런 생을 부러워하는 롬은 여전히 고향에 남아있다. 파타야에서의 성 노동도 그만두고 이젠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고향에 돌아와 밭일을 한다. 하지만 돈을 벌기엔 역부족이다. 파타야에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롬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대기 일쑤고, 아버지는 돈 되는 일을 하라며 너마저 거둘 수는 없다고 질책한다. 결국 롬은 다시 파타야로 향한다.



원정 결혼 vs 고향에 남기. 둘 중 전자가 월등히 안락해 보인다. 하지만 그 선택은 행복을 위함이 아니다. 고향, 친구, 가족(내가 낳은 내 아이까지)을 뒤로하고 모든 것이 낯선 나라에 가 낯선 남자와 바로 살림을 차리는 일은 최악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걸 ‘선택’이라 불러도 될지 영상을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무언가를 택한다는 건 여러 옵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인데, 이들의 삶엔 다양한 옵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남편이 받을 상처나 고민이 정당화될 순 없다. 편안한 삶, 고향으로 보내는 돈, 영주권을 얻기 위해 결혼한 것뿐이라는 생각을 세월이 흘러서야 하게 만드는 일,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런 의심을 하게 만드는 건 애초에 그들의 만남에 편안한 삶, 고향으로 보내는 돈, 영주권이 필수 요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건 그 조건들과 맞바꾼 수많은 여자들의 청춘이다.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 권력을 쥐고 있는 남자들에 종속되어야만 하는 여자들의 인생이다. 이 세상의 어떤 여자들은 아직도 나를 버리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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