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 선거의 관건이 정의당이라고 생각했다.
1. 나는 이번 선거의 관건이 정의당이라고 생각했다.
위성정당이 등장했으니 비례대표 47석 중 군소정당은 20석도 못 얻을 게 뻔했고, 나머지 190석 정도를 민주당이랑 통합당이 나눠 먹는 시나리오가 분명했다. 올 초 민주당이 오만한 모습을 보이길래, 경제와 조국 논란을 합쳐 150대 140이 가능할까 싶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정부가 정신을 못 차릴 때는 역전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안정된 시스템이 전염병을 통제가능한 정도로 묶어두자 두 당의 예상득표치를 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150대 140, 160대 130으로,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차례로 코로나로 무너지기 시작하자 170대 120이 눈에 보였다. 솔직히 170석을 넘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최대치는 170석이었고 또 그게 가장 유력한 수치이기도 했다.
나는 이번 선거의 관건이 정의당이라고 생각했다. 민주당이 170석을 얻는다면 이제 정의당이 10석을 넘게 얻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초점이 된다. 정의당을 합쳐 패스트트랙 정족수인 180석을 초과한다면 입법을 여권이 주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의당이 원하는 법안을 하나씩 끼워 넣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의당이 10석을 얻지 못할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위성정당에 모든 생명력을 흡수당했다. 실제로 정의당은 6석을 얻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단독으로 180석을 얻는 일이 발생했다. 이제 민주당은 입법 시 필요 의석을 얻으려 다른 당의 법안을 끼울 필요가 없게 됐다. 나는 국회에서 기사를 쓸 6개월 내내 대한민국의 총선, 대선의 역사를 뒤졌다. 민주화 이후 단일 정당이 5분의 3을 얻은 적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강성했던 한나라당도 과반을 득표하는 게 고작이었다. 5분의 3 이상은 권위주의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촛불 이후의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처음으로 30년의 의정사를 뛰어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2. 어디서 10석이 더 나온 걸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10석 가량이 어디서 더나온 것일까.
비례대표 득표율을 보면 민주당 측(시민당+열린민주당) 39%, 통합당 측 33%, 정의당 10% 정도로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런데 총 의석수는 80석가량 차이가 나니, 지역구에서 사단이 난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지역구가 163석 대 84석으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163대84라는 지역구, 그리고 최종 180대103석이라는 결과는 ‘연동형 비례제’가 오히려 이들에게 이득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칠게 이 지역구 의석 비율을 그대로 반영해보면, 아마 민주당은 187석을 얻게 된다.
위성정당이라는 희대의 우회책을 고려하기 전, 한국당 시절 통합당은 연동형 비례제를 극렬하게 반대했다. 3당 합당 이후, 지역구 소선거구제, 영남권 인구우세, 반공/발전국가의 담론을 바탕으로 보수 우위 유권자 지형을 누려왔던 게 보수정당의 역사다. 김영삼 시절부터 이회창의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박근혜의 새누리당까지 이어지는 보수정당에게 총선이랑 일단 과반수를 깔고, 이를 사수하는 게임이었다. 이들에게 이 같은 보수우세의 유권자 지형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특권이었고, 진보정당에게는 갖은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야할 장애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코로나 이슈가 여당에 유리했다고 해도,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2배 가까운 득표를 했다. 이 흐름이 끊긴 것이 국정농단 사태 이후의 대선이었는데, 이후 보수세력은 어떻게든 세력을 결집시키고 자기편을 긁어모으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간 노력을 회상하면 그들은 2배의 차이를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일어나자 마자 학교 도서관의 정기간행물실로 가서 조선, 동아, 중앙, 한국, 문화일보에 한겨레, 경향, 매일경제까지 이름 있다는 신문의 총선 분석 기사를 전부 뒤졌다. 역시 패배한 쪽에서 선거 분석을 깊게 내놓았다. 대부분 코로나 사태가 너무나도 호재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한편 이낙연 종로구 당선자에 대한 대권 기대심리가 기존 민생당의 몫이었던 호남표를 싹 긁어모았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재난기본소득으로 수도권 표를 또 제대로 단속했다는 평이다. 코로나가 가장 중요했으며, 유명 인사들의 지역 단속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거기에 야당의 지리멸렬했던 행보가 추가적 요인으로 꼽혔다.
지역구에서 통합당이 이렇게 참패한 데에는 서울 판도의 영향이 제일 컸다. 서울에서 민주당은 41석, 통합당은 8석을 거뒀다. 민주당계가 19대 30석, 20대 35석을 거둔 걸 생각하면 41석은 그들에게 쾌거일 것이다. 조선일보에서는 수도권 인구 20-30%가 호남 출신 인구인데 이낙연 효과에 기대 민주당에 쏠렸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결국 이러저러한 분석들을 합쳐보면 첫째, 코로나 둘째, 지역주의 셋째, 유명인사 효과 넷째, 야당의 지리멸렬이 이 같은 전대미문의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3. 중도층의 외면이라면, 영원한 외면인가?
이 네 가지 요인이 하나 같이 다 큰 영향을 미치긴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을 다시 보면, 민주당이 39퍼센트, 통합당이 33퍼센트, 정의당이 10퍼센트, 국민의당이 6.7퍼센트, 민생당이 2.7퍼센트 정도다. 흔히 보수가 범여권이라고 하는 민생당+정의당+민주당을 합치면 몇 퍼센트인가? 52퍼센트가량 된다. 반면 확실히 ‘보수’라고 할 세력은 통합당 뿐이다. 국민의당은 정책적으로는 확실히 통합당과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반문 연대’로 통합당과 묶어본다고 해도 겨우 40퍼센트다.
20대 국회는 어땠을까? 새누리당이 33퍼센트, 더불어민주당이 25퍼센트를 받았다. 정의당이 7퍼센트를 받아 범여권이라고 묶는다면 32퍼센트. 국민의당이 26퍼센트 지지를 받았다. 즉 20대 총선과 21대 총선을 비교해보면, 새누리당과 미래통합당의 정당지지율은 33퍼센트로 일정함을 알 수 있다. 즉 우리 사회 정확히 ‘보수’라고 하며 한나라당 계열 정당을 지지하는 고정층이 3분의 1이라는 뜻이다. 반면 20대 총선에서 범여권 계열이 32퍼센트를 받았으니 21대에서는 52퍼센트로 엄청난 상승폭을 기록했다. 제3지대 국민의당 지지세력이 전부 범여권으로 향한 것이다. 요컨대 통합당이 대표하는 보수가 거의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지역구 선거 결과를 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보수가 외면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김진태, 이언주, 민경욱, 차명진, 나경원, 심재철이 지역구에서 모두 떨어졌다. 반면 유승민의 측근 의원들, 유승민계라 불리는 의원들은 선전했다. 유의동, 류성걸, 강대식, 김희국, 하태경은 당선됐다. 이번 중도층들의 투표 성향은 명확했다. 강경 세력에 표를 주지 않는 것. 20대 총선에서 중도층은 보수 강경세력보다도 제3지대인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이 세력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황교안을 중심으로 세력을 재정비해 20대 국회에서 여야 4당과 대치하며 존재감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번 선거에서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3지대가 사라지면 다시 보수로 와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반대로 넘어간 탓이다. 야당은 20대 총선(2016년), 대선(2017년), 지방선거(2018년)에 이어 4연속 패배를 겪게 됐고, 이제 한국사회에서 ‘보수 우위’ 구도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정권 심판론이 여전히 33퍼센트 정도는 나왔지만, 이 말은 즉 보수세력이 3분의 1의 고정층으로만 남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도층으로 외연확장이 어려운 이상, 이들의 지지만을 호소하는 강경파들 역시 설 자리가 없게 됐다. 이제 3분의 1이 된 보수는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진보 우위’ 구도를 깨뜨려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됐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탄핵 이후 보수세력에게 21대 총선은 ‘주류’의 위치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보수는 쉬운 길을 선택했다. 보수의 ‘이념’을 갈아엎는 시도는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20대 총선 새누리당 패배 후 보수정당은 친박을 중심으로 재결집했다. 촛불 정국에 따라온 대선 패배 후에 황교안 전 대표는 ‘자유우파’를 중심으로 뭉칠 것을 호소했다. 박근혜 정부가 허울뿐인 ‘경제민주화’를 잠깐 도입하는 것처럼 꾸몄던 이래, 보수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던 것이다. ‘자유우파’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탄핵 찬성 세력인 중도우파 세력이 침몰했다. 바른정당과 바른미래당은 실패했다. 그들은 자유한국당과 미래통합당에 흡수됐으며 그 수장인 유승민은 기를 못 편 채 ‘문재인만은 안 된다는’ 희미한 이념 공조에 헌신하게 됐다. 그의 지성, 합리성 역시 그 희미한 이념에 묻히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