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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알 May 19. 2016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

읽고 생각하는 힘 - ㅡ<느낌의 공동체> 를 읽고 




복잡하고 혼란하다. 사실 세상 복잡한지 오래됐다. 다만 최근 유난히 시끄러울 뿐. 최근의 혼란이야말로 세상사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벅차다. 너나 할 것 없이 떠들어대서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세상 일이 자동으로 뒤엉킨다. 나는 그걸 풀 여력이 없다. 몇 번인가 애써봤지만 금방 지쳐버렸다. 모두 떠들어대고 악쓰는 와중에 세상 일은 점점 흐려진다. 머리 아픈데 옆에서 시끄럽게 하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눈을 감고 두통을 참아본다. 그리고 눈을 뜨면 어느새 모든 것이 흐릿하다. 안경을 벗은 것 같은 기분이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에 만져지는 것, 그리고 내가 딛고 서있는 것까지 다 흐려진 채로 나는 어딘가에 떠있는 것 같다.  잠을 덜 깬 듯, 잠을 덜 잔 듯 내 의식은 어딘지 몽롱하고 피곤하다. 



세상일은 어제도 혼란했고 그제도 혼란했다. 그 혼란이야말로 세상의 본질이 아닐까. 10여년전은 특히나 더 혼란했던 것 같다. 용산의 일이 있었고, 촛불집회가 있었고, 대통령의 자살이 있었다. 신형철의 책은 그 다사다난했던 10여년전의 혼란이 담겨있다. 그는 평론가고 평론가는 전문 독자다. 수많은 문학 작품을 읽었을 테지만 그가 문학만 읽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의 글에는 2가지 공기가 담겨있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당대의 ‘가공된 공기’와 순수한 당대의 공기. 그는 문학처럼 당대를 읽어냈고 당대를 평론했다. 본질적으로 그 두 가지가 전혀 다른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독자들에게는 구분이 필요했을 듯싶다. 그래서 이 책은 크게 문학이야기, 세태이야기로 나누어진다. 그 어느 부분도 부족함이 없다. 달필, 훌륭하다. 



세상사의 흐릿함 속에서 가치있는 일을 뽑아내는 것이 글쓰는 사람의 일이다. 그것만큼 머리 아프고 피곤한 일이 없다. 평론가는 기자처럼 ‘사실’ 뒤에 숨을 수도 없고 문학가처럼 ‘문학성’ 뒤에 숨을 수도 없다. 평론가는 온전히 그 흐릿함과 싸우는 직업인 것이다. 신형철 역시 몹시 피곤했을 터이다. 그 와중에 씩씩하게 단단한 디딤돌들을 골라내었다. 혹자는 그것이 사상가의 역할이라고 한다. 사상가도 한두명이여야지, 머저리까지 다 사상가를 칭하는데 사실 세상이 흐릿해진 주범이 이들 아닌가. 모두가 제 목소리 높여 악을 써대는 시대에는 유효한 말만 골라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사랑한다. 그의 글에는 아름다운 것을 파헤치는 흥분이 있고 올바른 길에 대한 고뇌가 있다. 그리고 문장의 길을 걷는 구도자로서 예술가로서 진정성이 있다. 


“요컨대 제도와 인간과 예술의 동시다발적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 정치학과 윤리학과 미학은 한 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p19
“나는 늘 문학은 천박한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에 맞서 숭고한 ‘몰락’의 의미를 사유하는 작업이라고 믿어왔다.” p186

그에게 문학과 정치(세태)는 윤리학으로 합쳐진다. 낡은 세계를 허물어버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그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일이다. 구세계의 ‘몰락’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윤리학은 새로운 세계를 다룬다. 문학이라는 공간에서 생각하고 정치라는 현실에서 행동하는 것. 윤리에 대한 갈구야말로 정말 골치 아프다. 매 순간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지난함 끝에서 우리는 새로 발을 디딜 안착지를 찾는다. 흐릿한 부유의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의 글에는 그 윤리가 있다. 아니 그 윤리를 추구하려는 모습이 있다. 


진부한 수미쌍관이지만, 세상일은 혼란하다 못해 눅진하다. 서로 딱 붙어 있는데 도저히 그걸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 것이리라. 그 속에서 명확한 것은 조여오는 두통뿐이다. 남들 떠드는 데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신형철이 말하는 것 같다. 책 읽고 생각하라. 세상을 읽고 생각하라.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한 답은 치열한 읽기다. 읽고 생각하면 윤리는 그 다음에 온다. 


“우리 역시 어떤 두려움 때문에 ‘진짜 눈물’로부터 도망치고 말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자 역시 용산의 비극에 분노하면서 글과 말을 보탠 적이 있지만, 그 이상을 하지 못했다. 그것이 내 삶에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p281

고뇌 뒤에 오는 참회가 진정 가치 있는 법이다. 역설적이다. 그 자체로 골 아픈 세상 속에서 필요한 것은 스스로 더 골 아파지는 것이다. 바로 고뇌의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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