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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선열 Oct 25. 2024

헤어질 결심

나를 찾는시간 



 이별은 사람이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 가운데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라 한다. 그런 고통을 스스로 자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헤어질 결심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어느 심리학자는 헤어질 결심을 하느니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  보라는 충고를 한다. 새로운 만남에 충실하다 보면 헤어짐이 별 충격 없이 서서히 진행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갑자기 큰 충격을 받기보다는 조금씩 나눌 수 있다면 무리가 덜 가기는 했지만 고통의 총량은 같지 않을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하니 기왕 겪어내야 할 고통이라면 오래 시달리느니 단번에 해결해버리는 게 옳을 수도 있다.


습관이란 오랫동안 몸에 배어 온 행동이다. 단칼에 베어내기가 쉽지 않으니 다부지게  헤어질 결심을 해야만 한다. 애초에 나쁜 습관을 들이지 않았으면 하지 않아도 될 수고인데 사람에게는 유혹에 지고 마는 성향이 있다. 나쁜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불나방처럼 불속으로 뛰어들고 마는 속성이다. 큰 상처를 입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빛의 화려한 유혹에 지고 만다 .끝내 헤어질 결심을 해야만 한다.사람의 성향에 따라서는 헤어질 결심을 하면 단번에 실행하는 사람도 있고 미적미적 행동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게  매번 어렵다.오랜 투병 생활로 미리 헤어짐을 알고 있었건만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거라고 자신을 달래기도 했으니 두고두고 아파야 했다. 일상이 마비될 정도의 아픔은 아니지만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그리움은 날로 더해지는 듯하다. 이별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이다.

반려견을 키우지 못하고 화초 하나 들이기도 겁이 난다. 수명이 다해서 어쩔 수 없이 맞아야 하는 이별이 싫다.

무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헤어짐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좀 다르기는 하다. 30년 전에 입었던 옷, 작거나 클 수도 있고 색이 바랠 수도 있어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옷도 버리지 못한다. 철이 바뀔 때마다 옷장 정리 전에 버려야지 마음먹지만 마음뿐이다.손은 어느새 옷을 고이 접어 옷장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이빨 빠진 그릇도 버리지 못한다. "서양에서는 이빨 빠진 그릇이라도 소중하게 쓰고 있대" 주워들은 말로 위로하면서 정작 쓰지는 않지만 구석에 모셔두고 버리리 못한다. 목 늘어진 양말, 까칠 해진 수건들도 쌓여 있다.

깔끔하게 정리하는 습관도 없으니 우리 집은 늘 이사 갈 집처럼 어수선하다. 시간 단위로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시도는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있다. 특히 환절기같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때는 몇 날 며칠을 전전긍긍하며 물건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다시 구석에 처박아 버린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해 보리라 마음먹지만 늘 마음뿐이다.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행동이 쉽지는 않다


습관은 쉬이 바뀌지 않지만 의식은 순간의 깨우침으로 바뀌기도 한다.마음은 늘 18세 같다는 게 인지상정이기는 하지만  노후를 인정하는 것도 늦깎이였던 나다. 65세가 되어 어르신 카드를 받으며 국가 공인 어르신이 되었어도 내심 나이 듦을 인정하지 못했다. 삐삐 거리는 교통카드 음이 카드를 쓸 때마다 국가 공인 어르신임을 알려 주었건만  남의 것을 빌려 쓰는 것처럼 그때마다 생소하기만 했다. 


노인이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 건 이런 외압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 보아야 가능했다.여기저기 신체의 노화를 인식하면서 스스로 노인임을 깨우쳐 갔다. 막상 나이 듦을 인정하는 일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수고해온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이렇다 할 흔적은 없지만  지나온 날들이 소중해졌다. 미련이 많은 성격 덕이다. 어쨌든 나이 듦을 인정하고 나니 삶이 더 소중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니 잘 살아야겠다. 숨 가쁘게 사느라 돌아 보지 못했던 지나온 날들과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노년의 삶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고 있다. 한때, 어려서 발달과업에 대한 연구는 많은데 노화에 대한 이론은 없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곧 깨달았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인정하는 시점이 노년의 삶이 된다. 남겨진 얼마 안 되는 삶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시점이다. 결심을 하고도 미적미적 미련이 많은 성격이기는 하나  나이 듦을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하다. 젊어서는 두려워했을 시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겪어내야 할 과정이다. 짧은 시간일수록 밀도 있게 쓰일 수도 있다.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 삶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하는 시점.이별의 고통은 남겨진  사람의 몫일 수 있다.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고통을 줄여 주고 싶기는 하다.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일,그리하여 나이 듦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 미련 없이 기쁘게 떠났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다면 이별이 고통이지만은  않을수 있다.

헤어질 결심을 하는 동안의 삶은 여느 때보다 진지하고 성실하다.자신을 돌아 보는 계기가 된다, 자신괴의 새로운 만남이다. 비로서 자신다워지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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