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KBO 포스트시즌이 진행되기도 하고 큐브에 관한 소재가 떨어져서 큐브에 대한 글을 많이 쓰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하나 써 보려고 합니다.
최근 한국을 달궜던 논란이 있죠. 심심한 사과 이야기입니다.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했더니 지금 이 상황이 심심하냐 같은 소리를 해댔고 결국은 사과를 다시 해야 했죠. 이 논란은 '왜 그렇게 어려운 말을 쓰냐'와 '모르면 배워야지 무식한 게 왜 그렇게 당당하냐'의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왜 이런 논란이 생겼는지를 따져보겠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정지우 변호사가 개인 sns에 올린 글이 있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볼게요.
심심한 사과라는 말. 사실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죠? 하지만 이때까지는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닐지라도 분명히 사용되는 말인 데다가 문맥 내에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죠. 서로 간의 최소한의 신뢰만 있다면 사과문에 있는 심심한 사과라는 말이 지루하다거나 사과를 대충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사과'를 할 마음이 있다는 '신뢰'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이 신뢰가 더 이상은 없다는 거죠.
상대를 믿지 못하니 단어 하나에 집착하게 되고 불신의 사회가 된 현재 단어 하나하나는 악의적 의도로 해석됩니다. 그러니 심심한 사과가 그런 뜻으로 해석된 거죠. 약간이라도 헷갈릴 만한 여지가 있(다고 착각 하)는 단어에 대해 최대한의 악의적인 해석을 붙여서 상대를 비난하기 바쁩니다. 영화 평가에 명징과 직조라는 말을 썼다가 유식해 보이려고 안달 난 평론가가 된 이동진 평론가의 사례도 있고요.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손스크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예전에는 손스크에 대해 이 정도로 부정적이지 않았어요. 손스크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의견도 많이 나왔죠. 그리고 최소한 손스크라는 걸 밝혔다고 해서 손스크는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을 댓글로 박아놓고 가는 경우는 없었어요.
요즘은 어떻죠? 손스크라는 걸 밝히는 순간 달리는 댓글은 '손스크는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입니다. 아니 손스크라는 말이 없어도 그냥 이 댓글부터 박아놓고 보는 경우도 있었죠. 저는 이게 신뢰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말하는 손스크의 문제점. 예전에는 없었을까요? 예전이라고 없지 않았겠죠. 그런데 왜 예전에는 손스크에 대해 지금보다 관대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신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내 기록이라는데 일부러 쉽게 섞어놓고 잰 기록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도 이런 믿음이 남아있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믿음이 없는 느낌입니다. 불신이 너무 과해서 평균 기록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만한 싱글 피비도 손스크라는 이유로,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싱피로 인정하지 않아버리고 있습니다. 그건 내 기록이 아니라 그 사람 기록인데도, 이 기록이 공인 기록으로 올라가는 기록이 아닌데도 말이죠.
물론 믿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고객을 무시해오던 업체가 사회적 비난 때문에 올린 사과문이 4과문이었다면 그건 글을 쓰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이해하기보다 이 사람들은 사과라는 걸 할 생각이 없다고 받아들이게 되겠죠. 이걸 뭐라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큐브도 마찬가지로 이전에 알려진 평균 기록이나 큐브의 성능, 경력 등을 근거로 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싱글을 뽑아냈다면 추가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조작을 의심하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느낌에 정도가 너무 심해요. 그냥 손스크=조작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은 정도.
큐브매니아 카페에서는 멤버 등급을 높이려 등업 신청을 할 때 기록을 올리게 되어있지만 사실 그 기록은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습니다. 정말 그 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등업 신청 전에 올라왔던 기록 글도 모두 믿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등업 신청 때 스탭들이 영상을 요구할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죠. 그 이유가 뭔지 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저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의적으로 쉽게 섞어서 잰 기록이나 처음부터 조작된 기록은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말이죠. 그 믿음 다시 가져 봅시다. 그래야 사회가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