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체코전에서 호주가 승리하면서 진작에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은 좌절되었습니다. 하지만 설렁설렁할 수 없었죠. 최하위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치욕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겼습니다. 매우 압도적으로 말이죠.
긍정적으로 말하면 일본도 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해냈습니다. WBC 역대 기록도 다 갈아치웠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많이 남습니다.
원태인은 많은 야구팬들의 우려대로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구속은 그럭저럭 나왔지만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죠. 프로가 그것도 못 버티냐고요? 프로 이전에 인간이니까요. 특히나 삼성 팬인 저는 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래 가지고 시즌 시작해서는 제대로 던지겠습니까. 중계에 찍힌 거 보니 많이 말랐더라고요. 얼마나 몸고생 마음고생 많이 했겠어요. 거기에 2회에 등판한 소형준의 컨디션은 안 좋아 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많이 멀어 보였기에 이미 던질 대로 던져서 초췌해진 원태인을 굳이 선발로 등판시켜서 실점하게 만드는 모습이 야구팬들에게 좋게 보일 리가 없습니다.
백업 선수들은 이제야 경기에 제대로 나왔습니다. 중국전에서의 타격성적을 근거로 이 선수들이 호주, 일본전에 뛰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나와도 무안타에 삼진이나 먹을 거면 차라리 백업 선수들을 돌려쓰면서 야수진 전체에 돌아가며 휴식을 부여하는 것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투수와 타자 모두 여론을 매우 크게 의식한 듯한 구성이었습니다. 어디 납치되어서 못 나오는 거냐는 소리를 듣던 kt 선수 소형준을 2회부터 등판시켜 3이닝을 던지게 했고 주전으로 나오면서 제대로 된 타격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던 일부 선수를 빼고 백업 선수를 대거 집어넣었죠. 그 의도를 제가 정확하게 추측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이 여론에 휘둘려서 선발 라인업을 꾸리는 것도 매우 이상한 일이죠.
큰 문제는 아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을 보자면 양현종이나 김윤식 등 많이 던지지도 않았으면서 성적은 바닥을 찍은 선수들을 1이닝씩 던지게 하는 것은 어땠을까 싶습니다. 평균자책점 99.99로 남고 싶은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번 WBC로 한국 야구의 현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모든 야구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2027 WB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솔직히 기대하지 않습니다. 4년 만에 대단하게 바뀌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죠. 소를 잃었다고 외양간을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계속 소를 잃을 일만 남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