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퍼큐버 May 28. 2022

미취학 아동에게 큐브 가르친 이야기 2

이대로 하는 게 맞는 걸까

그 아이와 벌써 4번을 만났다. 가르치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가 싶다.


4번째 만남에서 2x2x2 큐브를 다 끝낼 생각으로 호기롭게 아이를 만나러 갔다. 오늘은 아이가 부모님과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를 시켜놓았던데 아쉽게도 커피를 안 먹어서 커피는 됐고 감사하게도 아이스티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 할 줄 아냐고 물어봤을 때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큐브를 처음 만졌을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막해졌고 그냥 처음부터 다시 해 보는 걸로 했다. 그래도 지난번에 배운 게 있다고 진도 자체는 빠르게 나갔다. 공식 자체도 어느 정도 외우는 것 같았다. 따로 시범을 보여주지 않아도 공식을 사용해서 단계를 끝마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때는 오늘 2x2x2 큐브를 다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한 단계 넘어서 다른 큐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칭찬도 많이 해 줬다. 하지만 그 확신이 물음표로 바뀔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공식까지 알려준 뒤 큐브를 섞고 처음부터 아는 데까지 맞춰보라고 했을 때가 시작이었다. 아이는 전혀 다른 공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공식 자체는 가르쳐 준 공식이 맞지만 그 공식을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공식만 돌리고 있는 듯한 모습.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그저 공식을 써야 한다는 말만 돌아올 뿐 어떤 순서로 큐브를 맞춰나가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공식을 배우는 동안 나에게 보여줬던 모습은 무엇인 걸까.


2x2x2 큐브를 맞출 때 알아야 할 공식은 딱 2개다. 윗면과 아랫면을 맞출 때 사용되는 공식 하나와 옆면을 맞출 때 사용되는 공식 하나. 아이가 지금 하지 못하는 것은 이 두 개의 공식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구분하는 것이다. 하루에 공식 두 개를 배우는 것이 그 아이에게 무리였는지 그냥 그날따라 집중이 잘 안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두 공식이 완전히 꼬여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집에 와서는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의 집중력을 키워주겠다고 바둑학원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이 아이가 혹시 집중력이나 뭐 다른 부분이 부족해서 그것을 고치기 위해 큐브를 배우게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너무 멀리 나간 것일 수도 있다. 그날따라 집중력이 유난히 많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유치원생들 집중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니까.


아이는 해맑다. 제삼자가 보면 누가 봐도 하기 싫어하는 거 억지로 앉혀놓고 강제로 시키는 모습이지만 본인은 끝까지 아니라고 한다. 정말 다음 주에도 올 거냐고 물어보자 다음 주에도 오겠다고 한다. 다음 주에 다시 가르쳐준다고 한들 이 아이가 뭘 할 수 있을까. 돈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이게 맞는가 생각이 들 정도인데 돈을 지불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일까. 지금까지의 결과는 처음 보는 대학생이 1시간에 돈 얼마 받고 아이랑 큐브로 놀아주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다음 주에도 온다고 하면... 그때는 아예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한 번의 수업에 공식 1개와 그 공식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마스터하는 것을 목적으로 아예 2회 수업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는 것 말이다. 좀 극단적으로 보면 4회 수업으로 크게 잡아야 할 수도 있다.


만약 부모님께서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해도 크게 미련은 없을 것 같다. 나의 능력 부족이든 아이의 집중력 부족이든 내가 예상한 시간 내에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다음 주는 다른 아이와 부모님에게 과외가 예정되어 있다. 이 아이에게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시행착오였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꼭 성과라는 것을 보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