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는 숫자에 불과하다
"요즘 1티어 큐브가 뭔가요?"
"이 큐브, 지금 메타에서 몇 티어 정도 되나요?"
큐브 커뮤니티에서 끊이지 않는 질문입니다. 장비의 성능이 상향 평준화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숫자로 매겨진 티어(Tier)에 민감합니다. 하지만 2026년인 지금, 저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과연 그 티어가 여러분의 기록을 보장해주고 있나요?
티어는 시스템 내의 '단계'를 뜻합니다. 큐브로 치면 성능을 좋고 나쁨에 따라 줄 세운 단계죠. 보통 1티어는 '실패 없는 선택'으로 통하고, 그 외의 큐브들은 외면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큐브 판의 세대교체 속도는 무시무시합니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큐브들이 지금은 과거의 유물이 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가끔 입문하시는 분들이 몇 년 전의 리뷰나 티어리스트를 보고 지금은 메타에서 한참 밀려난 제품을 구입하곤 합니다. 티어라는 숫자에 매몰되어 현재의 나와 장비의 시의성을 놓치게 되는 것이죠.
이해를 돕기 위해 격투 게임 <슈퍼 스매시브라더스(대난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게임에서 캐릭터 티어는 기술의 프레임, 기동성 등에 따라 엄격히 나뉩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버그성 기술 사용 가능 여부까지도 들어갑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바로 피카츄입니다. 피카츄는 전통적으로최상위권 캐릭터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얼티밋이 발매된 초기에는 최상위 4인방에도 들어갔었고 메타가 변한 지금도 82개의 캐릭터 중 14위라는 높은 티어를 유지하고 있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피카츄는 그 높은 티어에 비해 실제 메이저 대회 실적이 저조한 편입니다. 캐릭터를 다루는 난이도가 워낙 높다 보니, 최상위권 선수들조차 피카츄로 꾸준한 성적을 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진짜 최상위 티어로 군림하던 과거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이론적이 반드시 실제 결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피카츄가 몸소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승부를 결정짓는 핵심은 결국 캐릭터의 스펙이 아닌, 그 성능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사용자의 숙련도와 일체감에 있습니다.
물론 게임과 큐브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애정이나 도전을 위해, 아니면 진짜로 약캐릭터가 손에 더 잘 맞아서 일부러 성능이 낮은 약캐릭터를 선택하는 유저들이 존재하지만, 큐브 세계에서 일부러 성능이 안 좋은 큐브를 메인으로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큐브는 장비의 성능이 너무 떨어지면 사용자의 숙련도와 상관없이 퍼포먼스 자체가 무너져버립니다. 게임은 낮은 티어로도 전략적인 승리가 가능할지 모르나, 큐브는 물리적인 하드웨어가 기록을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하죠. 2014년 포켓몬 월드챔피언십에서 '파치리스'가 예상을 뒤엎고 우승했듯 독보적인 잠재력을 끌어내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큐브에서는 일단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성능의 장비를 갖추는 것이 기본 전제입니다.
기본 성능을 갖춘 장비들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그때부터는 다시 궁합의 영역입니다. 최근 제가 메가밍크스 메인으로 사용하는 다얀 Pro M Large가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객관적인 하드웨어 성능이나 마그네틱 기술력만 놓고 본다면 많은 이들이 간 v2 Maglev를 더 우위에 둘 것입니다. 심지어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저는 다얀을 씁니다. 간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얀 특유의 디자인과 파지감이 제 손에는 훨씬 더 잘 맞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론상 최강인 큐브라도 제 손가락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파지가 불안정하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내 손이 가장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디자인을 선택했을 때 기록은 비로소 응답합니다.
큐브 기록이 정체되어 답답하신가요? 최신 1티어 큐브를 결제하기 전에, 지금 내 손에 쥐어진 큐브와 내가 얼마나 '동기화'되어 있는지 먼저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요? 성능이 너무 뒤처지는 큐브가 아니라면, 기록을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는 큐브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여러분의 손가락 끝에 달린 숙련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