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았던 기흉에 대하여

가능성 앞에서 선택해야 했던 순간들

by 라이벌 큐버

기흉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망설여졌습니다. 그동안 내가 써온 글의 대부분은 큐브에 관한 이야기였고, 이 글은 큐브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기흉이라는 병은 어느 순간 내 인생에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기흉을 겪었을 때, 사실 아프진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제 폐는 정상 크기의 절반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기만 해도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요. 숨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것이 호흡곤란이라고 부를 만한 상태라는 인식도 없었죠.
정확히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프지 않았고, 쓰러지지도 않았고, 일상생활도 큰 문제 없이 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병원에 안 가겠다고 버텼습니다. 기침이 나오는데 그게 너무 오래 지속되니까 부모님 등쌀에 밀려 병원에 갔다가 기흉이라는 것을 알았죠. 나중에 기흉을 겪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건, 생각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폐가 눈에 띄게 찌그러진 상태에서도, 본인은 그걸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흉은 더 위험한 병인지도 모릅니다. 분명 몸 안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통증은 그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닌데 엄청 아프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심각한데 통증은 별 거 아닌 수준이기도 합니다.


기흉은 이름만 들어서는 감이 잘 오지 않는 병입니다. 흔히 폐에 구멍이 나는 병이라고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폐에 난 작은 손상 부위를 통해 공기가 폐 바깥 공간으로 빠져나가면서 폐가 제대로 펴지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흔히 ‘허파에 바람이 찬다’고 표현하지만, 정확히는 허파 ‘밖’에 바람이 차는 병이죠.


상태가 가벼운 경우에는 자연 흡수를 기다리며 지켜보기도 하고, 공기량이 많거나 증상이 심하면 관을 넣어 공기를 빼는 외과적 처치가 이루어집니다. 관을 넣은 뒤에도 호전이 없거나 재발을 반복하면 수술입니다. 문제는 이 병이 재발률이 상당히 높은 병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관 삽입만으로 치료가 끝난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가능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치료의 방향은 크게 달라집니다.


예방적 수술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죠. 가만히 두면 다시 생길 수 있으니, 미리 수술을 해서 재발 가능성을 낮추자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온다는 건 동시에 중요한 전제를 하나 깔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준으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제가 만났던 의사들은 예방적 수술이라는 선택지를 언급하긴 했지만, 그것을 먼저 적극적으로 권유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저는 예방적 수술을 받은 적은 없죠. 이 이야기를 꺼낸다고 해서 예방적 수술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예방’이라는 단어가 환자에게 주는 심리적 무게에 비해, 그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들이 항상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특히 기흉은 사람의 조건에 따라 같은 선택이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성인지, 이미 군 복무를 마쳤는지, 아직 미필인지에 따라 치료 선택이 이후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집니다. 치료의 시기와 방식이 건강 문제를 넘어 이후의 삶 전반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선택의 순간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4년 초, 에스파의 멤버 윈터가 기흉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보도자료에서 선제적 조치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예방적 성격의 수술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죠. 윈터의 입장에서는 이 선택이 매우 합리적이었을 겁니다. 직업 특성상 비행기를 많이 타야 하는데 재발 가능성을 남겨두기 어렵고, 치료 시기나 비용을 조정할 여지도 충분했을 테니, 수술을 통해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결정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부모님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분의 아들은 기흉으로 입원했다가, 문제가 생긴 쪽 폐뿐 아니라 반대쪽 폐에도 언젠가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흉부 CT를 찍으면 크게 부풀어 오른 폐포가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소견은 재발 위험과 함께 언급되곤 하죠. 결국 양쪽 폐 모두를 수술하는 결정을 했고, 회복 과정은 가족이 보기에도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와서 그 선택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시에는 지금 문제가 생긴 쪽만 치료하고, 나머지는 상황을 지켜보는 선택이 충분히 같은 무게로 설명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곳의 병원에서 기흉 치료를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같은 병명이었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 느낀 고통의 정도는 놀랄 만큼 달랐습니다. 처음 치료를 받았던 곳에서는 통증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는 것조차 힘들었고, 이후에 치료를 받았던 곳에서는 수술 당일에도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통증이 적었죠. 이 차이가 왜 생겼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의료진의 판단, 상황의 차이, 혹은 내가 치료 과정을 겪으며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기흉 치료가 같은 이름의 같은 경험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다만 기흉이라는 병이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로 인해 많은 선택이 충분한 정보 없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은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 당장 큰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가능성’이라는 말만으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한 번쯤은 멈춰서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문제가 있는 건가, 아니면 가능성인가. 이 선택은 되돌릴 수 있는가. 나에게 이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기흉은 단순히 고치면 끝나는 병이 아니라, 언제 어떤 상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는 병입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답이 아니라, 질문 하나를 더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지금 당장 문제가 있는데 치료를 미루라는 뜻은 아닙니다. 기흉의 사망률은 낮은 편이지만, 그것이 위험하지 않은 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외과적 처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흉은, 응급실에서도 겉으로 더 아파 보이는 환자보다 우선적으로 대응되는 응급질환입니다. 지금 당장 외과적 처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받았다면, 치료는 반드시 받는 게 맞습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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