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빅스 큐브 해법서가 초보를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
큐브 커뮤니티에는 큐브 맞추기에 성공한 사람들만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들은 없죠. 그렇다고 실패한 사람들이 지금은 없냐. 아닙니다. 아직도 큐브 해법서를 보고도, 해법 영상을 보고도, 아예 과외를 받고도 큐브를 맞추는 데 실패하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죠. 분명 초보자용 해법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옵니다. 그런데 왜 1단계부터 막히는 걸까요?
초보자용 해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외워야 하는 공식을 줄이고 두뇌회전을 요구했던 단계를 쪼개면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제가 큐브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초급 해법과 2020년 이후의 초급 해법은 그 결이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중의 큐브 해법서에는 제가 큐브를 시작할 때나 쓰였던 해법이 최적의 초급해법처럼 수록되어 팔리고 있습니다. 유튜브에도 그 해법을 기반으로 한 여러 영상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죠. 이유가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출판업계 특유의 보수적인 접근방식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설명을 하는 사람이 몰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구식 해법도 틀린 해법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구식 해법도 해법입니다. 그대로 따라가면 큐브는 맞춰집니다. 따라서 큐브를 처음 맞춘 사람이 사용한 게 구식 해법이라면 이 해법이 가장 쉬운 해법이라고 생각하기 충분합니다. 그렇게 이 해법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갑니다. 실패한 사람은 그냥 사라지고 성공한 사람만 남게 됩니다. 성공한 사람 중 더 쉬운 방법의 존재를 알거나 개발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그 해법을 문서나 영상으로 체계화하여 올리더라도 구식 해법이 장악해버린 생태계를 뚫기는 쉽지 않습니다. 몇몇 해법영상이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구식 해법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제게 신식 해법과 비교한 구식 해법의 가장 큰 단점이 뭐냐고 물으시면 저는 "단계별로 외워야 하는 공식 사이 연관성이 없다." 라고 할 것입니다. 현재의 초급 해법은 아주 간단한 특정 공식 하나를 최대한 활용하여 실질적인 암기량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몇몇 단계에서는 차라리 새로운 공식을 외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할 수는 있지만 최소한 전체 과정의 절반 가까이를 특정 공식의 반복이나 변형으로 해결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큐버의 아이디어가 널리 퍼진 것이 아니라 최근 몇 년 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식 해법에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모든 공식이 독립된 별개의 공식이었고 그 모든 것을 외워야 했습니다.
또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1단계의 설명 방식입니다. 큐브 해법을 찾아보신 분이라면 1단계가 십자가 맞추기라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1단계는 원론적으로는 공식으로 해결하는 단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신식 해법에서도 이걸 공식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조각의 이동 과정을 일일이 쪼개서 알려주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구식 해법에서는 이런 설명을 매우 간소화하거나 아예 생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것을 큐브 처음 해 보는 초보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해법도 분명 있습니다. 당연히 초보들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포기하는 사람도 많이 나왔습니다.
저는 구식 해법으로 큐브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방식으로 큐브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신식 해법이 구식 해법에 비해 명확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초보자들이 1단계 문턱을 넘지 못해서, 공식 암기의 압박으로 큐브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구식 해법의 굴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이 글은 그 역할을 다한 셈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