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빵 뿅원장 Jun 11. 2023

수술하고 담배 피우시면 안 됩니다.

- 안 피웠다니까요. 안 피웠다고요!!    

(제목의 그림은 특정 환자와 관련 없는 심한 치석과 니코틴 침착이 된 치아 사진입니다.)


모든 환자가 다 어렵지만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환자는 뭐든 본인의 의지대로 하는 환자이다. 치료가 꼭 필요한 시기여서 치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다음 내원일에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된다. 그러다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때가 되어 나타나 '이제 치료해 줘'라고 이야기한다. 치과에서 손을 쓸 수 없을 때라고 하면 무엇이겠는가? 발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환자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우선 "안 빼고 치료만 안되나?"라는 말을 아무렇지 한다. 그리고 절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오늘 아침부터 열을 올리게 만들었던 L환자도 그런 환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심한 충치로 인해 치료를 권유했을 때는 당연히 나의 이야기를 무시했고, 환자 본인이 보기에도 도저히 가망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인지라 결국 이를 빼기로 결정하였고, 동시에 뼈 이식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수술 당일. 예정되었던 치아를 뽑고, 그 자리에 뼈를 이식하고, 차폐막(이식한 뼈 위를 덮어주는 막)을 덮고, 잘 꿰매 두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이대로 아물기만 하면 결과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가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것이었다. 이를 빼거나 수술을 하고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는 것은 회복이 지연되는 문제도 있지만, 담배를 피울 때 입안에 음압이 걸리면서 상처가 벌어지거나 피딱지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변기에 사용하는 뚫어뻥을 생각하면 쉽다.) L환자는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발치를 하고 수술을 하는 내내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수술이 끝난 후 주의사항을 설명할 때도 빨간 줄을 쳐가면서 설명했었다. 흡연을 해서 상처가 터지면 이식해 놓은 뼈도 빠져나올 수 있고, 차폐막도 터져 나올 수 있어서 상처 치유도 안되고, 골이식 비용도 더 들 수 있고... 등등. 환자는 당연히 알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담배 피워도 된다는 의사 있냐'는 식의 태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수술 다음 날 소독하기 위해 내원했던 환자의 입에서 방금 막 담배를 피운 듯한 냄새가 났다. 흡연 여부를 묻는 말에 '안 피웠다'는 답이 돌아왔고, 다시 한번 금연해야 함을 강조했다. 


2주 정도 시간이 흘러 실밥을 제거하는 날. 환자가 "아~"하고 입을 연 순간 담배 냄새가 풀풀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정도 덮여있어야 하는 수술 부위에는 차폐막이 노출되어 있고, 차폐막 위에는 갈색의 니코틴이 침착되어 있었다. 상처도 많이 벌어져 있어서 보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환자분, 흡연 계속하셨을까요?"라는 질문에 

"아뇨, 안 피웠습니다."라는 당연한 답이 나왔다. 

진심으로 환자 분이 말을 믿고 싶지만 입안 모습과 올라오는 담배 냄새에 절망과 분노가 함께 올라온다. "차폐막 위에 니코틴이 갈색으로 침착되어 있고 상처도 많이 벌어져 있고, 담배 냄새도 많이 올라옵니다."라고 말을 하니 아무런 답이 없다. 다행히 완전히 터져 나오지는 않아서 당분간 조심하기만 하면 아물 것 같은 상황이다. 여러 번 소독을 하고 2주일 정도 후에 다시 한번 체크해 보자 말하고 환자분을 내보냈다. 대기실에 나간 L환자는 우리 치위생사를 붙들고 온갖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환자의 말을 믿어야겠지만 뻔히 보이는 상황에 어찌 수긍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환자는 몇 년 전, 다른 부위 치료 때에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치과 치료는 환자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매일 먹고 말하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입이라는 신체 기관의 특성상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부터 치료 중간 단계에 환자의 증상이나 반응을 관찰하고 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환자는 협조할 생각도, 의사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고, 평소 습관대로 지내면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치료가 빨리 진행되지 않거나, 원하는 만큼 적응이 되지 않으면 치과의사의 잘못으로 여긴다. 어떤 환자는 치과 치료를 기계처럼 부속을 하나 갈아 끼우는 것으로 생각해서, 치료를 하자마자 불편했던 증상이 당장 없어질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철물을 넣자마자 왜 예전처럼 씹히지 않냐고 불평을 한다. "치과 치료는 일종의 재활치료와 같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나서 다 나았다고 해서 당장 예전처럼 뛸 수 있는 건 아닌 것처럼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해도 치과의사의 실력이 부족해서라는 답이 온다. 어쩌겠습니까. 늘 부족한 제 탓이지요. 


어쨌든 L환자는 2주일 후에 다시 내원하기로 했다. 어쩌면 오늘 했던 내 잔소리 탓에 한 달 즈음 지나서 다시 오실지도 모르겠다. 이러나 저러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나는 오늘도 고달프다.  

      


작가의 이전글 "O땡땡 임플란트 심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