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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Jun 13. 2023

촉을 믿으세요.

- 치과의사의 사주는 OO과 비슷하다던데... -

예전에 어떤 세미나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었다. 

"치과의사의 사주는 무당의 사주와 비슷하니까 촉을 믿으세요." 

당시의 강사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웃자고 하는 소리이지만 뭔가 느낌이 이상하거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꼭 확인하고 넘어가라'는 뜻이라고. 이어지는 농담에 웃으면서도 세미나장 안에 있는 여러 선생님들은 공감하는 눈치였다. 


상당수의 환자들이 본인이 겪고 있는 증상이나 전신질환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치과 관련 질환은 엑스레이를 보고 여러 임상 검사를 하면서 대부분 확인할 수 있지만 전신질환의 경우는 환자분이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접수를 하면서 전신질환 - 고혈압, 당뇨, 간염, 결핵, 알레르기, 수술 경험 등 - 여부를 꼭 확인하는데, 대충 듣고는 "없다", "혈압약 먹는다", "예전에 수술받았던 적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라는 정도의 가벼운 답만 돌아온다. 간혹 조금 자세히 물어보려 하면 "치과에서 이 하나 뽑는데 뭐 그리 깐깐하게 굴어!"라던지, "스케일링 한 번 하러 온 건데 그런 건 뭐 하러 물어?"라는 답이 돌아올 때도 있다. 그러나 치과 시술은 마취를 동반한 외과적 처치(째고, 꿰매고, 갈아내고 하는 걸 말한다)를 주로 하게 되므로 출혈이나 감염 등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K할아버지의 경우도 그랬다. "딸이 여기로 가보라고 했어. 앞니가 흔들려서 이를 빼야 될 거 같아. 지금 빼줘"라며 내원하셨고,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잇몸뼈가 많이 상해 있고, 치아도 심하게 흔들려서 발치가 필요했다. 접수를 하면서 확인할 때에는 "그냥 혈압약 먹고 있어"라고 두루뭉술하게 답하셨다. 뭔가 서두르는 느낌이었고, 정확히 얘기하지 않으셔서 혈압약이 어떤 것인지 여쭤보고, 어느 병원에서 처방받아서 복용하시는지, 혹시 수술이나 시술을 받은 경험은 없으신지 자세히 묻자 화를 버럭 내셨다. 

"아, 이거 흔들리는 거 하나 뽑는 게 그렇게 어렵나? 뽑기 싫으면 그만둬!"라고 하시길래, 

"아버님, 드시는 약 중에 피가 잘 안 멎는 약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를 뽑고 나면 지혈이 안 돼서 위험할 수 있어요. 혹시 시술받으신 거 있으면 그쪽 병원이랑 얘기해서 약 조절해야 될 수 있고요. 번거로우시겠지만 이해 좀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벌떡 일어나서 나가버리셨다.

잠시 후 따님(우리 병원에 오랫동안 다닌 환자분이다)에게서 전화가 왔다. 치과의사가 이를 안 뽑아준다고 했다고 하며 오셨단다. 따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몇 달 전에 심장 스텐트 시술을 하셨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허허허...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활동성 결핵 환자, 임신 초기 환자, 근처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수납을 완료하지 않고 보철물 임시 접착 상태로 지내다가 붙여둔 보철물이 떨어지자 치과가 없어졌다며 붙여달라고 왔던 소위 먹튀 환자, 혈액 투석을 하고 있는데도 말 안 하는 환자, 자해공갈 비슷하게 한 환자 등... 


운이 좋은 것인지 촉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사히 잘 걸러내서 지금까지는 특별한 사고나 분쟁 없이 지내왔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나도 촉을 믿는다. 뭔가 느낌이나 기분이 이상하거나, 찝찝한 상황이 되면 욕심내지 않고 멈춘다. 그리고 한 번 더 확인하고 검사를 하게 된다. (비과학의 과학화라고 해야 하나...) 


환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재의 몸 상태나 투약, 시술, 수술 경험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치과 치료 중에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다. 감염이 일어난다거나, 치유가 지연되거나, 출혈이 지속되는 일 등이 일어날 수 있으니 번거롭고 불편하더라도 치과의사에게 꼭 알려주시면 좋겠다. 


(늘 마무리가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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