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초부터 내원하셨으니 이제 10년 정도를 우리 치과에 다닌 환자분이 있다. 문제가 있거나 잇몸이 너무 나빠져서 빼야 되는 치아가 있다고 말씀을 드려도, 시간도 없고 돈도 없으니 어떻게든 안 빼고 쓸 수 있게 해 달라며 늘 무리한 부탁을 하셨었다. 무리인 줄은 알지만 그렇게 치료하면서 잘 지내셨기에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써보자며 늘 열심히 치료를 했었다. 대부분은 치주치료였고, 손목이 시큰거리도록 염증 조직과 오래된 치석을 긁어내면서 누군가는 당장 뽑았을 치아를 안 흔들리고 쓸 수 있도록 했었다.
올해 초, 치아가 깨졌다며 이 환자분이 내원하셨다. 작은 어금니 하나가 수직으로 파절이 되어 발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도 이 환자분은 안 빼고 살려 쓸 수 없냐고 몇 번을 묻고 또 물으셨지만 도저히 쓸 수 없어서 발치하기로 결정했다. 부러진 부분도 깊고 치아 뿌리도 휘어 있는 데다, 치아와 치조골 사이에 유착도 심해서 힘들고 어렵게 발치를 했다. 바로 옆에 있는 큰 어금니의 상태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살려서 쓸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환자분께는 이번에 발치한 치아에 대해서만 임플란트 치료를 권유드렸다. 나중에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오겠다고 하시기에 편하신 대로 진행하시도록 했다.
그리고 오늘, 그 환자분이 6개월 검진을 오셨다. 특정 부위에 음식물이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지만 별 이상은 없다고 하며 들어오신다. 그런데 뭔가 내 눈치를 심하게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환자분을 앉히고 입안을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번에 치아를 뺀 자리와 그 옆에 있던, 오랫동안 살려 쓴 어금니까지 빼내고 임플란트가 떡하니 심겨 있다. 황당하다. 그동안 치아를 살려보려 그렇게 애썼던 내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속이 상한다. 그렇게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며 매번 치료를 미루고, 어떻게든 안 빼고 쓸 방법이 없냐고 묻던 환자의 말이 떠올라 배신감이 든다. 이 사람에게 나는 그냥 얘기 잘 들어주는 호구였겠다 싶어서 화가 난다.
속상한 마음이었지만 환자분이 불편하다는 부위를 확인하고,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간단한 처치를 하고 환자분을 보냈다. 환자분이 계속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만 뭐... 괜찮다. 이런 환자분들이 생각보다 종종 있어서 잠깐 동안은 화가 나지만 이젠 금방 괜찮아진다. 다만 나중에 저 부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한테 와서 해결해 달라고 하지는 않으면 좋겠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문제가 생기면 임플란트 했던 치과가 멀어서, 병원이 없어져서, 의사가 바뀌어서,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사가 죽었다는 이유까지 대면서 원래 치료했던 곳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 역시도 치료 당시의 상황이나 어떤 임플란트가 사용된 건지 모르기도 하고, 선의로 손을 댔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온통 내 탓이 될 판이니 선뜻 치료를 시작할 수가 없다. 거기다 비용이라도 많이 든다고 하면, 왜 비용이 드는 거냐부터 시작해서 거기 가면 돈을 안 받는데 너는 왜 받는 거냐며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내가 치료한 게 아니면 문제가 생겨도 손을 댈 수가 없다.
부디 환자분들이 내가 받고 있는 치료 비용에는 내가 한 치료에 대한 책임과 보증에 대한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적은 비용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환자분의 선택이듯이 그 결과에 대한 부분도 환자분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그 적은 비용을 받았던 의사의 책임임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점빵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