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fine. Thank you, and you?

- 두 번째 이야기. 고맙습니다. 저를 믿어주셔서.

by 점빵 뿅원장

얼마 전, 밤 사이에 너무 아팠다며 내가 출근하기도 전에 치과에 와서 기다리던 외국인 여성 환자분이 한 분 있었다.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르셨지만 영어를 잘하는 남편분과 함께 오셔서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부담은 좀 덜한 편이었다. 하지만 진료 중간에 보호자가 계속 옆에 있기는 어려웠기에 아는 단어와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을 모두 동원해 설명하면서 치료를 해야만 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너무 아프다고 했던 통증의 원인을 파악해서 치료를 시작하고, 몇 번의 내원으로 후속 치료를 하면서 환자분은 이제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이번에는 반대편 치아가 깨졌다고 했다. 치아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어 있고 이 악물기 습관이 워낙 심하다 보니 치아에 생긴 균열이 진행되어 일부가 깨져나간 상태였다. 깨진 범위가 커서 크라운 치료를 진행하기로 하고 다음번 약속을 잡았다.


며칠 후 예약일 아침 일찍 남편분과 함께 내원한 환자는 처음 내원했을 때 불편했던 치아가 아프지는 않은데 뭔가 많이 움직인다며, 오늘은 크라운 치료 말고 불편한 곳을 먼저 치료해 달라고 말했다. 확인을 해보니 지난번에 불편했던 부위에 있는 치아의 일부가 수직으로 부러져 있었다. 발치가 필요한 상태임을 설명했지만 환자는 원치 않았다. 무섭기도 하고 발치 후에 임플란트나 보철치료 같은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서 당장의 불편감을 해소할 수 있는 응급처치만을 원했다. 그리고 오늘 진행하기로 했던 크라운 치료를 예정대로 진행하자고 한다. 양쪽을 마취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워서 환자, 보호자와 상의해 봤지만 양쪽 어금니 모두의 불편감 때문에 빨리 치료가 진행이 되기를 바라는 상황이었다. 결국 깨져나간 조각만 제거하고 발치는 생각해 보기로 하셨고, 반대편 치아는 계획대로 오늘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조각을 제거하는 쪽은 아주 적은 양의 마취를 해서 불편감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마취를 하고, 충분한 시간이 지나 마취가 된 것을 확인한 다음, 치료를 시작하려는데 환자가 갑자기 어지럽고 숨쉬기가 힘들다고 한다. 응급 상황은 아니었지만 치과 공포가 큰 분들은 이런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거나 하는 등의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잠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너무 힘들면 다음번에 다시 하자는 말을 했지만 또다시 마취를 하고 싶지 않다는 환자분의 의견에 따라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몇 번이나 불편감과 힘겨움을 호소해서 중간중간 멈추기도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진료 내외적인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치료를 진행했다. 치료 중간에 나타나는 변수들이 많아 힘든 것은 둘째치고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 너무나 힘들었다.


이러나저러나 치료는 진행이 되었고, 오늘 예정되어 있던 것들이 모두 끝났다. 환자분께 오늘 수고 많으셨다는 인사와 함께 위로를 전했는데, 환자분이 유닛체어에서 내려오면서 갑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일하는 내 동료 세 명이 너를 추천해 줬어. 미국사람 OOOO과 또 다른 미국사람 OOO이 얘기해 줬고, 지금은 미국에 가 있는 ****도 옛날에 너를 추천해서 내가 왔어. 오늘 고마웠어." (이 얘기는 모두 영어로 했다.)


와... OOOO은 얼마 전에 나한테는 영어로 이야기하고, 직원들에게는 한국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했던 (https://brunch.co.kr/@ed1f36c393854a8/105 참고) 환자분이고, OOO은 안 온 지 조금 된 환자분이고, ****은 개원 초에 다니다가 미국으로 다시 가셨던 분인데...


오전 내내 이 환자분 진료를 보면서 너무 힘들어서 완전히 진이 빠져버렸다. 하지만 이 분에게 나를 추천해 준 다른 외국인 환자분들이 나의 짧은 영어와 원활하지 않은 의사소통에도 불구하고 우리 치과에서 치료받은 경험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마구마구 샘솟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한테만 영어를 쓰는 OOOO씨는 여전히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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