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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속에 나를 넣어두기.

- '사람은 시스템을 통해 어른이 된다' : 정지우 작가님의 책에서.

by 점빵 뿅원장

요즘 읽고 있는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라는 책에서 정지우 작가님은 '삶이란 그냥 두면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어서 흘러가는 강물이 된다. 그러나 의식과 규칙이 있으면 박힌 말뚝처럼 삶의 준거점이 된다. 그런 것들이 삶에서 나쁜 일들, 걱정들, 불안들이 들끓어 넘칠 때도 삶에 어느 정도 일관성을 준다.', '사람은 시스템을 통해 어른이 된다'라며 '이런 시스템이 우리 삶 전반을 지켜주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라고 했다.


이 글을 읽고 지금 내 삶은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나 잠깐 고민하게 되었다. 남들보다 출근 시간이 늦어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고,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쉬다가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거나, 귀찮은 날은 그냥 건너뛰고 11시 반에서 12시 사이에 잠을 자는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을 한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라고 말을 하지만 그 덕분에 사는 건 더 재미가 없어지고, 변화가 없으니 스스로 나아지거나 달라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점점 더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지금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내 삶의 시스템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첫 번째로 시작한 것이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기'이다. 저녁에는 피곤하고 귀찮기도 하고, 아이와 놀아주려 하다 보면 운동을 빼먹는 날이 생기게 된다. 사실 8월은 휴가를 비롯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헬스장에 거의 안 가다시피 했고, 9월 들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두 번 정도밖에 안 갔다. 차라리 아침 일찍 가면 사람도 별로 없고, 빼먹는 날도 적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제부터 헬스장으로 향했다.

여섯 시 반에 맞춰둔 알람이 울려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누워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가야 되나... 내일부터 갈까... 아침에 하는 일을 책 읽기로 바꿀까...' 등의 수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첫날이니 일어나서 가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이미 시간은 15분쯤 지나 있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부스스한 머리로 아파트 헬스장으로 향한다. 내려와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운동을 하고 있다. 스트레칭을 하고, 러닝 머신에 올라 걷기 시작한다. 요새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핑계로 뛰는 것은 천천히 하기로 했다. 속도를 조금씩 올려가며 30분 정도 걷고, 다시 스트레칭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등교 준비를 하는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샤워를 한 다음 '스픽' 앱을 켰다. 매일 하고 있지만 리그에서 강등되지 않기 위해 간신히 시간만 채우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이 시간에 20분 정도 해보려고 한다. 아침을 먹고 잠깐 앉아서 책을 읽으려는데 눈에 안 들어온다.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켜고 영어드라마를 틀었다. 한글 자막을 켜놓고 듣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들으려고 애를 써본다. 조금 보다가 시간이 되어 커피머신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서 출근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아침. 어제와 똑같은 일들을 했다. 다만 아침에 같은 시간에 일어났어도 조금 덜 망설이면서 곧바로 헬스장으로 내려갔다는 점이 나아진 것 같다.


며칠이나 이걸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단한 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침 일찍 걷고 운동을 했다는 만족감이 있고, 저녁 시간에는 요가를 하던지, 아이와 닌텐도 스포츠를 하던지 하면서 좀 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겼다. 틈틈이 하던 스픽 앱을 짧게 끊어서 보느라 앞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속상함을 잊어버릴 수 있고, 다음 날 아예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어서 '어차피 기억 안나는 거, 돌머리가 되었다는 불편한 마음이라도 줄여보자'는 기분이다. 일하는 사이사이에 책을 보기도 편해졌고, 잠깐씩 글을 쓸 시간도 생겼으니 약간의 변화로 조금 더 나은 하루가 된 느낌이 들어 좋다.


계속 이어나가기도, 많은 변화를 만들기도 힘들겠지만 조금씩 생활을 정돈해 봐야겠다.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 나를 넣어 두어 계속 무언가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정지우 작가님의 말처럼, 그렇게 해서라도 꾸준히 나를 움직일 동력이 필요한 요즘이다. 내일 아침도 꼭 일찍 일어나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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