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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Jun 27. 2023

가까운 데에서 진료받으세요.

- 지인, 지인의 소개, 그 넘지 못할 간극. 

(사진은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 배우님이 "내가 임마, 느그 서장하고~"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OO가 연락 안 했나? 나 OO의 소개로 왔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말을 놓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온다. 

데스크에서 접수할 때부터 뭔가 시끄럽고 무례한 말투의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의 소개라면서 처음 만나는 내게 반말을 했다. 평소에 반말을 잘하지 않는 나이기에, 누군가의 반말이 매우 거슬린다. 어지간히 연세가 있는 어른이 아니고서야 이제 반말을 들을 나이도 아닌데...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인의 소개로 온 환자는 어렵다. 물론 지인도 어렵다. 

VIP 신드롬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 환자들은 '내가 불편해서 온 것이긴 하지만 특별히 생각해서 너희 병원에 온 거야'라는 마인드를 깔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신경 써서 진료를 해줘야 하고, '특별히' 친절해야 하며, 비용도 '특별히' 할인해 주어야 하고, 혹시 약속 시간을 못 지키더라도 '특별히' 본인이 원하는 시간으로 변경해 주거나, 늦게 와도 '특별히' 먼저 진료를 봐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누군가의 소개로 왔기에 그렇게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소개해 준 사람에게 '거기 별로야.', '다른 데보다 비싸.', '나에게 특별한 대접을 안 해줘.'라는 말로 그 서운함을 표현한다. 간혹 금쪽같은 우리 직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대하는 무례함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만 보면 더 신경 써서 진료해야 하고, 평소보다 더 친절해야 하며, 더 좋은 진료를 하면서도 제대로 돈도 받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바꾸는 예약 덕분에 비는 시간을 만들며, 바쁜 시간에도 다른 환자들 사이에 끼워 넣어 주어야 하며, 우리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아주 불편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환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소개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믿고 환자분을 보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하지만 특별한 대접을 기대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비용도 정상적으로 받겠습니다. 싼 것을 기대하고 오신다면 안 오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신다면 그 소개가 부끄럽지 않도록 아주 열심히, 꼼꼼하게 진료하겠습니다."라고. "혹여나 저에 대해 기대한 부분과 다르시다면 가까운 곳에서 진료를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치과는 가까운 곳이 좋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소개 환자가 이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길을 걸어가다가, 너무 아파서, 지나가다 간판을 보고 들어오지 않는 한 우리 병원에 오는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누군가의 좋은 평가를 듣고 나에게 몸을 맡기는 분들이다. 그래서 꼭 지인의 소개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좋은 평가가 이어지도록 모든 환자분들에게 애쓰고 있다.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환자들과의 인연이 또 다른 소개 환자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모두가 소개 환자 아닌가.

게다가 우리는 한겨레, 단군의 자손이 아닌가.



덧붙이는 episode 


- 예전에 어떤 환자분은 내 가족의 소개로 오면 30%는 할인해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너무나 당연하게 말했었다. 그래서 물었다. 저도 그 댁에 뭐 사러 가면 그만큼 할인해 주나요? 돌아오는 답은 나는 치과의사여서 여유가 있어서 할인해 줘야 되고, 자기는 장사하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안된단다. 제가 듣기로는 저보다 많이 여유 있는 분이던데요??


- 어떤 환자분이 내가 좋아하는 어떤 분의 이름을 대면서 치료를 받으러 온 적이 있었다. 그 분과 각별한 사이라며 이런저런 것을 요구하기도 하길래 뭔가 이상해서 그분께 전화를 해서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그 XX가 거기 가서 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이게 미쳤나? 이런 XXXXXX가 XXXXXXX.... (욕설욕설욕설)"라는 답이 왔다. 와... 사람들이 지인이라며 이렇게 이용하는 건가...?


- 가족 중에 누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길래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 환자분 성함을 말하니 모르는 분이란다. 그러면 누구지...? 얼마 후에 듣기로는 가끔 가는 김치찌개집 식당 이모님이란다. 지인분들과 얘기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어떻게 찾아오신 것 같단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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