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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Jul 10. 2023

장마가 시작되었다.

- 유비무환의 계절 :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밤새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부었다가 아침이 되면 잦아들기를 반복한다. 이제 좀 지나간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비가 쏟아지는 날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면서 습하고 끈적이는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병원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중에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다.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예약환자 부도율이 높아졌고, 정기검진 환자는 나중에 오겠다는 전화가 이어졌다. 새로 오는 환자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이고... 이번 달은 또 뭘로 버티나...라는 생각이 앞선다.


비가 오면 할 일이 별로 없다. 누군가는 책을 읽으라고, 밀린 공부를 하라고, 할 일이 없으니 넷플릭스라도 보라고 한다. 그런데 책이 눈에 잘 안 들어오고, 공부는 하기도 힘들고, 계속하고 있는데도 늘 밀리고, 넷플릭스는 수많은 콘텐츠들 사이에서 뭘 봐야 할지 고민만 하게 된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 보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약 환자가 왔으니 나오라는 직원들의 호출이 온다. 


작년에 다짐했던 것들 중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 있었다. 매출이 얼마고, 순이익이 얼마인지를 계속 계산하다 보니 환자가 환자가 아닌 돈으로 보이는 순간이 왔었다. 병원을 운영해야 하니 돈에 대한 부분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또다시 그렇게 집착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벌어야 할 것 같아서, 구멍 난 잔고를 메워야 할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자산을 남겨주고 싶어서 등의 합리화할 이유를 찾다 보니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마가 시작되고 환자가 줄어드니 생각이 많아진다. 직원들 휴가비는? 이번달 매출은? 세금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차라리 멍 때리고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아아나 마시고 먼 하늘이나 바라보고 있어야겠다. 어차피 비가 올 거면 아무도 안 오게 시원하게 쏟아붓고 지나가면 좋겠다. 

단, 비 피해 없이. 

(비가 많이 오면 우리 치과가 있는 건물 지하 주차장이 잠길 수 있다....ㅠ.ㅠ)


오래간만에 정인의 '장마'나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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