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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Aug 12. 2023

방에 콕 처박혀 있습니다.

- 진료가 아닌 시간에 하는 일 

  환자가 없는 시간이면 진료실이 아닌 원장실에 있게 된다. 진료실에서 서성이고 있으면 직원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괜히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게 되어서 그냥 방으로 들어간다. 콧구멍만 한 치과에 기지개 한 번 크게 펼치기 어려운 코딱지만 한 방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거나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보내는 시간도 있지만 이 방은 치과에서의 두 번째 업무공간이다. 


  병원은 진료 이외에도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가 많다. 시시때때로 날아오는 보건소, 공단의 공문들, 제출해야 할 서류들, 환자들이 요청한 치과 보험용 서류들, 회계사무실에서 요청한 서류들 등의 서류 작업을 해야 하고, 기공소를 비롯한 각종 거래처에 비용도 보내주어야 한다. 직원들이 구매해야 하는 물품을 인터넷 재료상이나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놓으면 결제도 해주어야 하고, 나중에 한 번에 바쁘지 않기 위해 쌓여있는 서류들도 시시때때로 정리해야 한다. 매달 특정일에 늘 해야 하는 일들도 있어서 방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은 끊임없이 쌓이고 또 쌓인다. 게다가 요즘처럼 세미나를 듣거나 온라인 강의, 유명한 원장님들의 라이브 서저리를 보는 것까지 하다 보면 방에서의 시간은 쉴 새 없이 바쁘게 지나간다. 그래서 잠깐 눈을 붙이거나 넷플릭스 시청, 독서는 오히려 시간을 쪼개서 틈틈이 해야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원장님들도 그런 건 아니다. 규모가 커서 행정 일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거나, 작은 치과여도 직원들에게 맡기는 경우에는 나처럼 이렇지 않다.)  


  어렸을 때는 개원을 하면 잠깐씩 진료를 보고 방에서 드라마 보고, 책도 실컷 읽으면서 살 줄 알았다. 가끔 보는 선배들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에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내가 보지 못하는 그분들만의 고충도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자영업이고 사업인지라 사업주로서 해야 할 일들은 빠짐없이 해야 한다. 게다가 의료라는 특성상 뒤떨어질 수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뭔가를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방에 있는 시간은 휴식이 아닌 또 다른 업무시간이 된다. 


  언젠가는 큰 병원에서 행정업무 담당 직원을 두고, 진료 이외의 일들은 '믿을만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진료만 하고 싶다는 꿈을 가끔 꾼다. 하지만 성격도 그렇고, 타고난 그릇이 작다 보니 안될 거라는 것도 안다. 어쩌겠는가. 그냥 그릇대로 사는거지. 그냥 열심히 사는 내 모습에 만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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