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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Oct 13. 2023

안녕, 나의 LG.

- 4년 6개월을 사용한 핸드폰이 깨졌다.

  추석 연휴 때의 일이다. 어머니 댁에 와서 밤에 아이의 손을 잡고 편의점에 가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가로등 아래에서 보니 앞 유리에 금이 갔다. 늘 케이스를 끼워 사용했고 평소에 물건을 매우 깨끗하게 사용하는 편이어서 흠집이 거의 없는 핸드폰이었는데 앞면에 길게 금이 간 걸 보니 당황스러웠다. 느려지기도 하고, 예전보다 사진도 흐려지는 것 같고, 일반적인 핸드폰 사용주기를 고려하면 오래 쓴지라 슬슬 바꿔야 한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너무나 아깝고 아쉬웠다. 이 핸드폰은 수첩처럼 접을 수 있는 형태의 화면이 하나 더 있어 기계에 관심이 많은 아들 녀석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도 하다. 게다가 이제는 단종된 LG 핸드폰이어서 비싼 돈을 들여 액정을 갈기도 뭣한 상황이다.


  액정에 금이 가기는 했지만 화면에 안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우선 사용하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주로 인터넷 뱅킹이나 검색, 잠깐씩 동영상을 보는 정도이기 때문에 굳이 급하게 바꿀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지난 휴일, 첫째 아이와 밖에 나갔다가 셀카를 찍는데 사진 한가운데에 뿌옇게 금이 간 것이 보인다. 전면 카메라 렌즈까지 깨진 것이다. 젠장... 바꾸긴 바꿔야 되나 보다.


  누가 요즘 LG핸드폰을 쓰냐고 하겠지만 처음 발매 당시에 화면이 두 개로 나오는 게 너무 신기해서 구입했고, LG전자에 다니는 친구가 개발에 참여했어서 자랑스러워하면서 사용한 핸드폰이었다. 오랜 시간 사용하면서도 심각한 고장 한 번 일어나지 않았고, 발열이나 기능저하도 거의 없는지라 매우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LG가 핸드폰 사업을 접는 것을 누구보다 많이 아쉬워했다.


  조금 지나면 AS도 안될 것이고, LG페이 -- 대부분 삼성페이는 알지만 LG페이는 잘 모른다. 그러나 LG페이도 있다. 심지어 잘 된다. -- 사용도 종료된다고 해서 바꿔야 되는 시기가 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아쉽다. 아내는 새 핸드폰을 사면 금방 잊어버릴 거라고 하지만, 나는 사용하는 물건에 애착을 많이 갖는 편이라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며칠 있다가 새 핸드폰을 샀다. 대세는 아이폰이라지만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게 어려웠어서 늘 사용하던 대로 안드로이드 핸드폰을 골랐다. 예전 같았으면 여러 가지를 비교하고 고민했겠지만, 이번에는 살 기종이 정해져 있다시피 했다. 무엇보다 손목이 아팠던지라 작고 가벼운 핸드폰을 고르다 보니 뻔하게도 갤럭시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이나 자료가 많아서 새 핸드폰을 켜기 전에 컴퓨터로 미리 옮기느라 몇 시간이 걸렸다. 아이고... 오랫동안 사용한 만큼 쌓인 자료도 많구나... 라며 꾸역꾸역 정리를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새 핸드폰을 켜니 자동으로 뭔가 뜬다. 기존 핸드폰에 앱만 하나 설치하면 사진, 문서, 앱 구분 없이 그대로 옮겨진단다. 원하는 것만 골라서 옮길 수도 있고, 어처구니없게도 옮겨지는 속도도 무지무지 빠르다. 참... 내가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었다니...


  오히려 문제는 새로운 앱에 로그인을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뱅킹부터 시작해서 자주 사용하는 앱에 로그인을 하려고 하니 끝도 없이 새로 인증을 받아야 했다. 그날 받은 인증 문자만 50개가 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왜 이렇게 아이디와 비번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인지... 하다못해 병원용 이메일의 비밀번호도 기억이 안 난다. 뭔가 간단한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모르니 어쩌겠는가.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가까스로 이것저것을 처리하면서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나니, 그제야 그동안 참 편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핸드폰이 없으면 업무처리도 안되고 소통도 불가능한 세상에서 내가 모든 정보를 기억하지 않아도 나를 대신해 나를 알려주고, 할 일을 확인해 주고, 타인의 연락과 소식을 전달해 주는 편리를 너무나 쉽게 누리며 지내온 것 같다. 개인 정보 노출이 무섭고, 디지털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지만 거기에 적응해 너무나 편리하게 살아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며칠 사용해 보니 새 핸드폰은 무척이나 좋았다. 가볍고, 빠르고, 화면도 깨끗하고, 사진도 더할 나위 없이 예쁘게 나온다. 간혹 끊기던 와이파이도 쉴 틈 없이 잘 이어지고, 가끔씩 애를 먹이던 블루투스도 이렇게 잘 연결되는 것이었나 싶을 만큼 잘 된다. 모든 부분이 좋아졌지만, 기분은 오랫동안 손 때 묻었던 노트를 잃어버린 것처럼 아쉽다.


  쓸 일은 없겠지만 갑자기 필요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가방에 LG 핸드폰을 넣어서 다니고 있다. 헤드폰을 꽂고 들으며 감탄했던 훌륭한 LG 핸드폰의 음질도, 칙칙한 듯하면서도 편안했던 화면도 모두가 아쉬운 날이다. 조만간 액정 교체를 알아보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핀잔을 듣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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