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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Oct 12. 2023

일 년에 네 번, 그리고 두 번.

- 모순같은 시간

  제목처럼 일 년에 네 번, 그리고 두 번씩 앓는다. 크게 아픈 게 아닌 앓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일 년에 네 번. 

  한없이 섬세하고 민감한 나의 호흡기는 계절의 변화를 기가 막히게 인식한다. 달력이나 절기의 변화보다 훨씬 정확하다. 뭔가 느낌이 와서 그날 날씨를 찾아보면 어김없이 갑작스러운 기온 상승이나 하강, 계절의 변화, 폭염이나 한파가 온다고 한다. 그날이 되면 알레르기인들 대부분이 겪는 증상 -- 눈이나 코가 간지럽다거나, 콧물이 난다 -- 정도가 아닌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일할 때 쓰는 마스크 안에는 쌍코피 같은 콧물이 흐르고 있고 고글 안에는 비련의 남주인공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죽하면 계절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항히스타민제를 10통 정도 사서 병원, 차, 집, 아내의 차와 가방에 한 통씩 두고 있다. 뭔가 조짐이 보인다 싶으면 재빨리 알레르기 약을 먹지만, 일 년에 네 번 오는 정말 심한 날에는 결국에는 이비인후과 원장님을 찾아가 각종 약을 비롯한 주사까지 신세를 져야 한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는 이때의 나는 코밑이 벌겋게 부어있고 눈이 충혈되어 누가 봐도 방금 울고 나온 모습이다. 

  면역치료 요법을 받아보려고 했었지만 오랫동안 날 봐주시던 이비인후과 원장님은 40살 넘으면 그것도 잘 안 든다며 굳이 치료를 권하지 않으셨다. 가끔씩 좁아진 비강을 넓히는 수술을 권하기는 하시지만 예전에 한 번 수술을 받고 나서 너무 괴로웠던지라 두 번 다시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때마다 코 안에 뿌리는 약을 처방받아서 쓰거나 약을 먹으면서 그때그때를 넘기곤 한다. 

  얼마 전 자주 가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분이 "혹시 완치된 분이 있는지?"를 묻는 글이 올라왔었다. 온갖 민간요법과 한방, 양방치료법에 대한 댓글이 달려 있었다. 모르는 누군가가 보면 혹할 법한 민간요법도 있었고, 나 역시도 처방받았었던 약물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었다. 뭐 하나 정답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본인에게 맞는 제각각의 치료법을 알려주는 것을 보며 '아이고... 나만 이렇게 줄줄 흘리는 건 아니네...' 하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봄, 가을이 되면 몸이 앓는 것 못지 않은 마음의 알레르기를 앓는다. 심각한 우울증이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이유 없이 마음이 헛헛해진다. 무엇을 하더라도 뭔가 빠뜨린 것 같고, 어디를 가도 무언가를 놓고 온 것 같은 기분. 해야 할 일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 걱정에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생각을 되짚게 된다. 예전에는 이 시기가 되면 외로움도 많이 타서, 주변 사람들에게 괜한 안부 전화를 했었는데 자꾸 민폐가 되는 것 같아 요즘에는 참고 있는 중이다. 

  제일 힘든 건 이때가 되면 나 자신에 대한 미움과 자책도 심해져서 밤에 자다 깨서 이런저런 걱정에 잠을 설치게 된다는 점이다. 오늘 낮에 있던 수술과 진료, 직원의 실수, 잊어버리고 안 한 일들, 가족에게 잘못한 일들,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들에 대해 반쯤 잠든 상태에서 화도 내고, 사과도 하고, 반박할 말도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피곤한 몸으로 일어나 다시 출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시기이다. 조금이라도 극복해 보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소설 '좀머 씨 이야기'처럼 병원 주변과 근처 대학교, 공원을 걸어 다니기도 하고, 햇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기도 한다. 별 문제도 없는데... 힘든 일도 없는데... 속 썩이는 사람도 없는데 나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하는데도 해가 갈수록 더하는 걸 보면 그냥 나이가 드는 건가보다 싶으면서도 이러다 어느 날 큰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곱게 나이 들어야 하는데.... 

  '그나마 하늘이 파래서 참 다행이다'라는 말과 함께 평화로워지려 애쓰는 중이다. 

  이 계절이 너무 좋은데, 빨리 이 시기가 지났으면 하는 모순같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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