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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Dec 01. 2023

글쓰기 근육은 없어지고
마음의 근육만 커지는군요.

- 정말 오랜만에 쓰는 글.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글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쌓인 브런치 알림에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근육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었는데, 어차피 없는 근육이 하루 이틀 안 한다고 생기겠냐....라는 마음이었다. 오히려 글쓰기 근육은 뒤로 미루고 마음의 근육만 커지는 시간이었다. 평온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기를 늘 기도하는데, 아무래도 신은 없나 보다. (죄송해요 하느님. 제가 냉담자여서 그런 건가요... ㅠ.ㅠ) 


  아침에 출근을 할 때마다 오늘은 또 무슨 황당한 일이 생겨서 나의 복장을 터뜨릴까 두려운 마음이었다. 어떤 날은 치과의 심장 같은 컴프레셔가 멈춰 있어 당황했고, 어떤 날은 수도 메인 밸브가 잠기지 않아 수리를 불렀는데 상가에서 우리 병원으로 들어오는 수도만  배관이 이상하게 설계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되어 황당했었다. 어떤 날은 아침진료 시작 전에 네트워크가 안되어서 엑스레이와 차트를 보기 위해 서버컴퓨터로 오가며 진료를 봐야 했고, 어떤 날은 유닛체어에 버튼이 안 먹혀 뒤로 눕혀진 환자를 끌어올려야 했던 날도 있었다. 황당한 기공물에 한 번 충격받고, 그것에 대한 담당 기공사의 반응에 두 번째 충격을 받아 분노의 사자후를 토해내는가 하면, 갑자기 날아온 법원 전자소송 서류에 아침부터 가슴이 서늘했던 날도 있었다. 


  다행히 컴프레셔는 직원 중 누군가 밸브를 잘못 잠가 놓아서 안 돌아가는 상황이었을 뿐 고장은 아니었고, 수도 밸브는 수리하러 오신 사장님의 고군분투로 무사히 고칠 수 있었다. 고장 난 네트워크는 공유기를 교체하면서 회복되었고, 유닛체어는 수리에 수리를 거듭하다가, 결국 체어 회사의 퇴사한 직원분까지 동원되어 수리를 마무리 지었다. 기공소는 기공소장님이 나서면서 해결이 되었고, 법원 전자소송 서류는 환자 중에 누군가가 소송이 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료 제출 요청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제 9년 즈음 사용한 장비이다 보니 교체시기가 가까워져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름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고, 어젯밤까지 괜찮던 장비가 하루의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멈추니 당황스러웠다. 배관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배관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니 겁도 났었다. 당연히 잘 맞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기공물이 황당하게 만들어져 오니 분노가 치솟기도 했었다. 조심스러운 성격상 적절한 선에서 방어진료를 하고 환자와의 관계도 잘 유지하고 있는데 전자소송 문서라고 날아오니 표지만 보고 지레 겁먹었었다. 


  일주일 즈음 지나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도대체 이 막힌 것 같은 가슴을 어떻게 뚫어야 하는지 걱정에 걱정을 거듭했었다. 모두가 힘들게, 상대방이 상처받을 만큼 날을 세우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후회가 된다. 어찌 보면 쌓이고 또 쌓였던 문제가 한 번에 터져 나오면서 스스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그렇게 쌓인 고름 같은 울분이 터져 나오고, 갈 길을 잃은 생각이 누군가에게 나쁜 마음으로 전이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서 그 나쁜 마음이 자꾸만 다시 나를 갉아먹는 악순환을 거듭한 게 아니었을까...


  '올해가 빨리 가게 해주세요'라는 바램이 이루어진 건지 눈 깜짝할 새에 벌써 12월의 시작이다. 마음이 힘들어서, 일이 바빠서 놓쳤던 글쓰기의 근육은 점점 쪼그라들고, 버티고 참는 마음의 근육만 커지는 것 같아서 아쉽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아서 마음의 근육은 좀 안 커졌으면 좋겠는데.... 남은 한 달 동안이라도 마음의 근육은 그대로 있고, 글쓰기 근육과 몸의 근육만 좀 커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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