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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Feb 02. 2024

오래간만에 다수의 강적 출현.

- 다정은 공짜니까. 그냥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

사진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공효진 배우님입니다.




  1월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생각한 바가 있고, 목표한 바가 있어 열심히 일했다. 문제는 환자가 늘어나면 같은 비율로 힘든 환자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려운 케이스이거나 애쓰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면 마음이라도 편하겠지만, 힘든 환자의 대부분은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강적들.

  퇴근할 시간 즈음에 부녀가 내원했다. 50대 후반의 아버지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딸. '아빠가 이가 많이 흔들리고 빠져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 내원 이유였다. 하지만 치과의사 짬이 벌써 15년이다. 느낌상 여기저기 다니면서 치료'견적'을 내서 비교하고 있는 것 같다. 뭐 그럴 수 있다. 치과 치료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나 역시도 그렇게 오는 환자들에게 치료계획을 설명하면서 충분히 생각해 보고, 다른 곳도 다녀보고, 비용도 충분히 비교해 보시라고 한다. 다만 치료 계획은 의사의 경험에 따라,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지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그런 것은 감안해 달라고 말한다.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문제가 있는 부위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심한 치주염으로 발치를 여러 개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몇 개는 만지기만 해도 당장 빠질 것 같았다. 확실히 발치를 해야 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남은 치아 중에 치주치료를 해서 살려 볼만한 것들이 있어 설명을 했다. 발치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한 번 빼고 나면 끝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살려서 써보자는 이유였다. 하지만 환자도, 보호자도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환자는 계속 내 말을 자르면서 치아를 그렇게 빼고 나면 당장 어떻게 하냐는 만 반복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치아 상태와 치료 계획을 설명할 때  발치하고 나서 다음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기간 중에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모두 설명했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이야기해도 환자는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지 않았다. 같이 온 보호자 - 환자의 딸 - 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치료 방향이나 방법보다는 어떤 브랜드의 임플란트를 쓰는지, 돈이 얼마나 드는지만 반복해서 물어보았다. 그런 사람들이야 워낙 많으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정말 불쾌했던 것은 진료실로 들어오면서 핸드폰을 켜고, 화면을 가리고, 핸드폰의 마이크 부분을 내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는 100% 녹음하거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이다. 가릴 것도, 숨길 것도 없기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다니면서 의사의 말을 몰래 녹음하거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무슨 말로 꼬투리를 잡을지 모르기에 꼭 필요한 설명 이외에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째 강적들.

  작년 연말에 고등학생 딸과 엄마가 내원했다. 예전에 다른 치과에서 치료했었던 어금니가 깨졌다는 것이 내원 이유였고 검사를 해보니 신경 치료를 했던 치아에 충치가 너무 심하게 진행되어 발치가 필요했다. 나는 어지간하면 치아를 살리려고 애써본다. 특히 아직 어린 학생의 경우는 어떻게 해서라도 발치하지 않는 쪽으로 해보거나, 정 안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버틸 수만 있도록 해보는데 이 경우는 빨리 이를 빼야 했다. 다른 치아에도 충치가 워낙 많아 보호자에게 설명했지만 납득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다른 치과도 가보고, 충분히 더 알아보시라 하고 보냈다. 며칠이 지나 연락이 와서는 치료 비용에 대한 설명을 못 들었다며 치료해야 하는 부위와 각 치아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사진을 찍고 정리해서 자기에게 보내라는 것이다. 내원 당일 치료 방법과 비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했었고, 자료까지 만들어서 보내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내원해서 설명을 해주겠다 말했다. 그렇게 자료를 제공하는 치과도 있겠지만 우리는 인력과 시간 문제상 그런 것까지는 하지 않는다 이야기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다른 치과와 비교를 하고 싶은데 생각이 잘 안 났거나, 다른 치과에 자료를 가져가서 여기 치료 계획대로 해달라고 하는 경우이다.) 그랬더니 뭐라 뭐라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었다. 또 며칠 있다가 아이만 보내겠으니 발치를 해달라고 하길래 수술적인 발치가 필요한  부분이어서 보호자와 동반해서 내원하면, 동의서를 작성하고 진행하겠다고 했더니 다음 달에나 오겠다며 연락이 없었다. 몇 번의 예약과 노쇼를 지나 며칠 전 또다시 예약을 했고, 그날은 내원을 했다. 오자마자 다른 환자와 상담을 하고 있는 데스크 직원을 붙들고 막무가내로 치료 계획을 적은 엑스레이를 내놓으란다. 직원이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고 치료 진행 여부를 물으니 오늘은 치아를 뽑고 간다고 했다. 환자를 진료실로 불러 마취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보호자는 대기실에 있도록 했는데 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들어온다. 날씨가 추워서 히터를 켜두었는데 그 바람이 자기에게 많이 오니까 히터를 끄라고 했단다. 다른 대기 환자들도 있는데 그분들은 어쩌라는 것인가? 자기가 자리를 옮겨 앉거나 정 불편하면 나가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더니 학생도 만만치 않았다. 마취를 하고 발치를 시작했는데 기구가 날카롭고 위험하니 불편하면 왼손을 들라고 했다. 치아를 쪼개서 빼야 하는 케이스이다 보니 더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환자의 오른쪽에서 내가 기구를 움직이고 있으니 환자가 오른손을 들면 부딪치면서 다른 치아에 손상을 가해지거나 날카로운 기구에 찔려서 다칠 수 있다고 몇 번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기구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오른손을 든다. 마취가 잘 안 되었나 싶어서 확인을 해봤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냥 조금만 불편하면 손을 드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기구를 움직이고 있는 곳을 향해서 정확히 오른손을 든다. 불편하면 왼손을 들라고 몇 번을 말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도무지 진행이 안되고 있어 참아보도록 이야기를 하고 빠르게 치아를 뽑고 봉합하고 내보냈다. 그랬더니 학생 어머니는 학생에게 왜 주의를 주는 건지 불만인 눈치였다. 직원들이 설명을 하고 내일 소독을 받으러 오도록 했더니 이번에는 학생과 어머니가 툭탁거리기 시작했다. 내일 학원을 가야 되니 못 온다는 학생과 그래도 소독받으러 와야 한다는 어머니의 의견이 충돌하면서 대기실에서 서로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우리 직원이 그러면 이따가 발치 후 상태에 대한 확인을 위해 전화를 할 테니 그때 말해달라고 했더니, 학생 어머니가 파리를 쫓아내는 것처럼 손을 휘휘 저으며 직원의 말을 막으며 가만있어 보란다. 결국 둘이서 계속 툭탁거리다 다음번 약속도 제대로 못 잡고 나가버렸다.


  세 번째 강적.

  몇 번의 치료 과정을 겪고 드디어 크라운을 끼우는 날이다. 이제 끝이다. 이 환자는 내원하는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서 엄청 바쁜 분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병원에 와서 치료를 하려고 하면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진료실 안에서 다른 환자분들도 앉아 있는데 아주 아주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그래서 밖에서 전화를 다 하고 들어오시도록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면 거의 다 끝났다며 진료실 안에서 통화를 끝까지 한다. 그 시간 동안 진료실 안의 직원과 환자 모두가 그분의 사업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한다. 그나마 나는 다른 환자분 진료를 하면 되지만 그 옆에 있는 직원은 그 통화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치료를 시작하고, 잠시 입을 헹구도록 하거나, 약제가 굳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거즈를 물고 있어야 하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전화를 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계속 통화 중이다. 그러면 나가서 통화를 다 마치고 들어오라 해도 다 끝났단다. 그러고 나서 기다리는 동안 유튜브를 켠다. 이어폰도 아닌 핸드폰 스피커로 소리가 다 흘러나온다. 다른 사람이나 병원 직원은 안중에도 없다. 모두가 본인의 치료 시작을 위해 기다리고 있어도 전화를 해야 한다. 도대체 이 분은 우리가 뭘로 보이는 것일까... 그래도 무사히 마무리했다. 이제 그만 오셔도 된다.


  어지간한 것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안으려 하고, 슬의생의 정원이(유연석 분)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고 싶다. 아이가 울고 떼써도 너도 오죽하면 그러겠냐...라는 마음으로 받아주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도 안 되는 생떼도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같은 설명을 수십 번 하는 것도 환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우리가 쉽게 풀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다시 설명하고, 아픈 것은 없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렇게 애쓰고 나면 우리 마음을,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 병원의 환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에게 우리는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일 것이기에, 좋은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의 대사가 생각난다.


 "사람들이 막 사는 게 징글징글할 때, 그럴 때 술 마시러 오잖아요.

만사 다 짜증 나고 지쳐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싶어요.

다정은 공짜니까. 그냥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


 " 그런데 어떨 때 사람들이 나한테 너무 막 해. 막 너무 함부로일 때도 있고.

 막 가끔은 저도 그게 좀 그래요."


 우리 기왕이면 서로 배려하고 좀 친절하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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