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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Feb 15. 2024

그런 게 바로 보험사기입니다.

- 저는 그런 서류 안씁니다. 절대로요.

그림은 `2012 보험사기 방지 홍보아이디어 공모전 수상작(금감원 제공)'입니다.

구글에서 검색을 통해 얻었습니다.





  2016년도에 한 번 내원하고 온 적이 없던 환자가 며칠 전 내원했다. 어금니 부분이 아프다며 아침 일찍 왔고, 다른 환자들 예약이 있는데도 자기는 기다리고 싶지 않으니 먼저 봐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다. 아침 첫 시간은 1주일 전부터 이미 예약이 차 있었기 때문에 예약 환자분들을 먼저 보고 나서 이 환자의 진료를 시작했는데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검사를 시작했는데 도무지 확인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자기 얘기만 하고, 입안을 보고 있는 중에도 기구를 손으로 밀어내거나 내 말을 끊으면서 이야기를 시도한다. 파노라마 방사선 사진을 촬영하고 구강 내를 비교하면서 다시 확인했더니 잇몸질환으로 인한 통증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스케일링을 먼저 하고 경과를 봐가면서 필요에 따라 추가적인 잇몸치료를 진행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잇몸질환이 주원인인 것으로 판단이 되지만 불편하다고 하는 부분의 치아에 균열이 의심되는 부분이 보여 통증의 원인으로 치아 균열 가능성을 설명했다. 다만 치아 균열은 엑스레이나 검사 상으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증상을 지속적으로 봐가면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을 했다. 문제는 이 환자가 균열이라는 단어에 꽂힌 것이었다.

  

  우선 스케일링을 시작했다. 우리 치과 위생사들은 경력도 오래되었지만 매우 부드럽게, 그리고 깨끗하게 스케일링을 한다(이것은 정말 내가 자부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스케일링 기구를 대자마자 소리를 지른다(더 정확하지는 아직 대지 않았을 때부터 소리를 질렀다). 아프단다. 너무 불편하면 약처방을 하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니 그건 또 아니라며 스케일링을 받고 간다고 하길래 조심스럽게 진행을 했다. 뭐 여기까지는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스케일링이 끝나고 데스크에 수납을 하러 가서는 우리 헤드 위생사에게 균열이 있는 치아가 파절이냐고 묻는다. 우리 헤드 위생사가 '파절 상태가 아니고, 환자분께서 이야기하시는 증상에서 미루어 볼 때 균열의 가능성이 있고, 치아에서 미세하게 금이 간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 설명드린 것'이라고 답을 했더니 금이 간 것처럼 보이면 파절이지 않냐고 묻는다. 진찰을 할 때 불편 부분에 대한 사진을 반드시 찍어두기 대문에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설명을 했는데도 '균열'이라는 단어에 꽂힌 환자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파절'이라는 진단이 맞지 않는지 묻고 또 묻는다. 결국 나에게 공이 넘어와서 분명히 말했다. 사진 어디를 봐도 치아에 파절 된 부분은 보이지 않고 있으며, 통증 양상에서 유추할 때 균열이 있을 가능성에 대한 부분만 설명한 것이라고. 그랬더니 왜 이게 파절이 아니냐며 툴툴거리며 갔다.


  다음 날 몇 번씩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요는 '파절' 상병으로 진단서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보험사에 제출을 하면 진단만으로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직원이 전화를 붙들고 한참을 설명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내원하라고 하자 그날 오후에 내원해서는 '금이 간 것 같으니까 파절이 아니냐, 보험사 직원도 그렇게 말했다'며 진단서를 써내란다. 그래서 '파절이라고 한 적이 없고, 금이 갔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지 확진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보험사 직원이 진찰을 한 의사가 아니지 않으냐'라고 얘기했더니 환자의 말이 가관이다.

  "예전에 다른 치과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치아 파절 얘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그쪽 치과 원장님이 보험사 직원과 통화를 했고, 파절로 진단서를 받아서 내가 보험금을 타먹었어요."라고. 그 순간 그렇게 해줬다는 그 치과의사에 대한 부끄러움과 황당함에 머릿속이 멍했다. 목구멍 끝까지 '그게 바로 보험사기입니다. 아줌마 같은 사람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 보험료까지 올라가고 피해 보는 거예요.'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싸움으로 이어질 것 같아 참고 또 참았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그저 '어떻게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부정한 방법으로 보험금을 수령하려 하는데 어떻게 의사에게 동참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뿐이었다. 결국 나는 그렇게 못해주겠으니 가라고 했고 환자는 계속 구시렁거리면서 나갔다. 다음 날에도 전화가 와서 직원들에게 계속해서 치아 파절 상병이 안 되는 이유를 물어봤다고 한다.


  환자분이 가진 사보험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면, 잘 치료받고 보험 혜택을 받는 것이 환자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많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자기보험 보장 범위에 해당이 되지 않는 치료인데도 '이렇게 써주면 보험금이 나온답니다'라던지, '보험설계사가 말하길 원장님이 차트를 고쳐서 써주면 보험금을 탈 수 있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말대로 해주지 않으면 '융통성이 없다'든지, '더럽게 깐깐하다'라는 말로 이상한 사람을 만든다. 나는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가족, 내 직원에게 부끄럽지 않을 뿐인데 '보험금을 타먹어야 하는' 비양심적인 당신들을 위해 윤리적,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서류를 써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러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쓰다 보니 다시 화가 난다.

  나쁜 짓을 하고 싶으면 남들 모르게 혼자 해라. 그게 마치 대단한 융통성인양, 그렇게 생긴 돈이 자랑인양 떠벌이지 말고. 괜히 바르게 살고 싶은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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