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겠어요. 여기까지가 우리의 인연인 것을.
든 사람 자리는 몰라도 난 사람 자리는 표가 난다고 했던가... 결국 K위생사는 퇴사를 했다. 그것도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우리 모두가 힘겨워하는 방법으로.
K위생사가 퇴사 의사를 밝힌 지 한 달이 되어갈 무렵이었다(<직원, 끝나지 않는 고민 편> 참고). 계속해서 구인 공고를 냈었지만 연휴가 끼어있는 시기인지라 지원자가 몇 명 안 되었고, 그마저도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하루 마음이 초조해져 갔지만 K위생사의 퇴사 날짜를 정해 놓은 것이 아니어서 그래도 사람을 구할 때까지는 있겠다는 무언의 동의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사흘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K위생사가 원장실 문을 두드리고는 들어왔다. "원장님, 내일이면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린 지 한 달째인데요." 물론 알고 있었다. 나 역시도 마음이 바빴으니까. "K선생님, 알다시피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력서도 안 들어오고, 사람을 못 구했어요. 불편하겠지만 이번 달 말까지만 있어주면 어떨까요?"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퇴사 의사를 밝힌 지 한 달이 지났고,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으니 내일까지만 나오고 그만 나오고 싶단다. 후....
지난 한 달 동안 K위생사는 그런대로 잘 지내는 듯했다. 특별히 트러블도 일어나지 않았고, 업무상의 실수도 많이 줄어들었고, 이전보다 나와 손발도 잘 맞춰가는 듯했다. 물론 실수를 해도 가급적이면 눈감고 넘어가거나 다른 위생사들이 그 실수를 메꾸는 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특별히 심각하게 불편할만한 상황이 없었던지라 '이렇게 잘 적응하면서 좀 지내보면 어떨까?'라는 기대를 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K위생사는 마음속은 그저 한 달의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던 것인지 본인이 정한 퇴사일을 하루를 앞두고 내일까지만 나오고 더 이상 출근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한 것이었다. '그것은 근로자의 권리이니까, 퇴사는 사업주에게 통보하면 되는 거니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K위생사가 아쉬운 상황일 때마다 동료 위생사들과 내가 배려했던 상황들이 생각나 많이 서운했다.
더 일해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우습고, 나보다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가 더 힘든 상황인 것 같아서 그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았으니 내일까지 일하고 정리합시다'라는 말로 마무리하고 다른 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다들 현재의 상황에 황당해하면서도 차라리 잘 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퇴사하는 것이 맞는지는 서로에게 의문이었다.
속이 상해서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새웠다. 부족한 손보다 사람에 대한 아쉬움에 속이 쓰렸다. 굳이 그런 생각을 할 것도 없지만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해줬는데...'라는 좀스럽고 꼰대 같은 생각이 계속 들어서 더 속상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진료를 하고 안녕을 고했다. 잘 지내라고, 그래도 우리 치과에 있는 동안 수고했고 애썼다고. 힘든 시기를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고.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라고. 더 이상의 긴 말은 할 말이 없어서 그만두었다.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 출근하니 뭔가 썰렁하긴 하다. 하지만 얽매이지 않으리라. 마침 비가 오는 날이어서 환자도 별로 없고 바쁘지 않으니 그런대로 할 만하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서로 눈치 보고 힘들어하는 분위기가 없어지니 다들 얼굴도 편해 보인다.
지나갈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올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 직장이 더 즐거운 곳이 되도록 애써보리라. 내일은 직원들과 함께 맛있는 점심이라도 먹으러 나가야겠다. 나간 사람도 속상했겠지만 함께한 여러분도 마음고생 했노라고. 그래도 이렇게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