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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Jun 09. 2023

"치료 견적 받으러 왔어요."

- 치과 간의 가격 비교. 그 서운함에 대하여.      

컴퓨터 가격 비교 견적 사이트.


생각보다 많은 환자들이 "견적을 내기 위해 왔다"며 타 치과와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내원한다. 정말 듣기 싫어하는 말이지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아무래도 비보험, 고가의 치료가 많다 보니 환자들이 가격 비교를 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되는 문제가 있다. 인터넷에서 공산품을 사는 것처럼 같은 물품을 가장 싸게 파는 곳을 찾는 것이라면 가격비교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만 치과 치료는 환자 개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치료를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큰 틀에서 보면 빠지거나 망가진 치아를 수복하고 예쁜 미소를 만드는 방향으로 치료를 진행하겠지만 세부적인 치료 내용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 치료한 브리지가 부러졌다며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


#26, 27 사이 화살표 부위가 수평으로 깨져서 이미 분리되어 있었다.
#25 치아의 볼 쪽 화살표 부위 도재가 깨져있다.
위 브리지의 엑스레이 사진


이런 상황일 때 치료 방법이 몇 가지나 될까?

첫 번째, 기존의 브리지를 제거하고 다시 만드는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

두 번째, #27의 앞에서 잘 잘라서 #27은 그대로 사용하고, #25는 도재가 깨졌기 때문에 다시 만들고, #26 부위는 임플란트를 심어서 치아를 묶지 않고 각각의 치아로 분리하는 경우

세 번째, 브리지를 모두 제거하고 #25, 27은 새로 제작, #26은 임플란트를 식립 하는 경우

네 번째, #26 부위(pontic이라고 한다)를 제거하고 #25는 깨진 부위만 레진을 이용해서 우선 메워 주고, #27은 그대로 사용, #26은 임플란트를 식립 하는 경우 등....


여기에 더해 각각의 경우마다 재료 선택(지르코니아, PFM, Gold 등)의 조합을 하면 수십 가지 치료 방법을 만들 수 있다. 아울러 환자의 사회적, 경제적 사정(내원 횟수, 거리, 비용 등)과 남아있는 치아의 상태를 고려해서 치료 방법을 결정하게 되므로 흔히 말하는 견적을 내서 치과 간에 비교를 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어진다.

  

게다가 치과의사마다 추구하는 치료의 방향이나 방법, 치료할 수 있는 영역마저도 다르다. 전통적인 치료 방법을 추구하는 의사도 있고, 새로운 기법과 장비를 먼저 배우고 서둘러 도입하는 의사도 있다. 어려운 수술이나 치료는 가급적 하지 않는 의사도 있는 반면, 고난도의 수술이나 새로운 치료 방법을 적극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병원마다 사용하는 재료, 장비, 기구도 제각각이다.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격이 저렴한 재료를 주로 사용하는 병원도 있지만 좋은 결과, 편한 치료를 우선으로 하기 위해 고가의 장비, 비싼 재료를 사용하는 병원도 있다. (비싼 재료, 비싼 장비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치료 과정도 쉽고 결과도 좋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보철물을 제작하기 위해 거래하는 기공소의 실력마저도 차이가 많다. (아무래도 잘 만드는 곳은 기공료도 좀 더 비싸다.) 실제로 나의 경우는 특정 보철물들은 근처에서 만족스러운 기공소를 찾지 못해(근처 기공소들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의 모 기공소와 3D 스캔과 택배를 이용해서 기공물을 거래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나오거나 다른 치과보다 많이 나오면 단순히 가격만으로 여기는 "다른데 보다 비싸다"거나 "과잉진료를 한다"는 말을 한다. 오히려 무조건 적은 비용으로 치료하거나, 최소한의 보험 진료만 하면 "양심치과"라며 좋은 의사 취급을 받고 나머지 의사들은 다 과잉진료를 하는, 돈만 밝히는 나쁜 의사 취급을 받게 되는 게 현실이다. (아... 글을 쓰다 보니 열이 오른다... 워... 워...)


처음에는 이런 것도 설명해 봤지만 매번 설명을 하기도 어렵고, 귀 기울여 듣는 환자도 거의 없어서 어느 날부터인가 포기하게 되었다. 치료에 대한 몇 가지 옵션을 제시해도 "의사가 정해줘야지"라는 말을 듣고, 내가 생각하기에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말하면 "과잉진료하네", "돈 많이 드는 방향으로 치료하네"라는 말에 지쳐버렸다. (어쩌라는 걸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과의사는 '돈만 하는 기술자'라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우리의 선배들, 동료들, 어쩌면 내가 그런 현실을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나 같은 점빵을 운영하는 치과의사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양심적인 치과이며(뭔가 부끄럽군...), 이재에도 그리 밝지 않아서 자신보다는 환자에게 좋은 방향으로 치료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뭐... 점빵은 오늘도 파리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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