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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빵 뿅원장 Jun 09. 2023

소아 환자, 그만 보고 싶습니다.

- 물론.... 그러지 못하겠지만 말이죠...   

우리 치과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고, 주변에 초, 중학교가 있다. 그래서 어린이 환자가 많이 온다.


나 역시도 두 아이의 아빠이고, 아이들을 좋아하다 보니 치과에 오는 것이 무섭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하려 애쓴다. 주변의 어떤 치과처럼 뭔가를 나누어 주면서 환심을 사는 것보다는 치과에 대한 편안하고 좋은 기억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이가 오랫동안 구강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실적으로 치과의 매출에는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 이건 자영업자로서의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이다. 읽는 분의 양해를 바란다.)


그 덕분인지 아주 오랫동안 다닌 친구들이 꽤 많다. 세 살 때부터 다녔던 친구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지금도 오고 있고, 갓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왔던 친구가 내년에는 고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한다. 엄마, 아빠, 형아 셋이서 사지를 붙들고 끌고 와서 애를 먹이던 아이가 지금은 나보다 키가 더 큰 고등학생이 되어 걸걸한 목소리를 내며 정기적으로 오기도 한다. 멀리 이사 간 아이가 근처 할머니댁에 올 때면 예약을 해서 들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소아 환자를 보는 것에 대한 주변의 평가도 좋은 편이고 소개를 받아 오는 경우들도 많다.


그런데 왜 그만 보고 싶냐고?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힘은 들고, 돈은 안 돼서 그런 거 아니냐고. 글쎄... 스스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단순히 돈만 보고 하는 것이었다면 그 오랜 세월 동안 아이들이 계속 올 수 있었을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늘 반갑고, 나 역시도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 소아 환자는 그만 보고 싶다.



아이의 치료받는 과정을 SNS에 올리고 싶어서 다른 환자들도 있는 진료실에 막무가내로 들어와서 사진부터 찍고 있는 부모들, 자세히 상태를 확인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를 설명했는데 다른 치과에서는 그런 설명 못 들었다며 과잉진료 하는 거 아니냐며 돈만 아는 몰염치한 치과의사로 몰고 가는 부모들, 원인과 결과에 상관없이 유치니까 무조건 싼 거로만 해달라는 부모들, 다른 데서 치료한 게 잘못된 거 같은데 그쪽 치과의사가 잘못한 거 아니냐며 앞뒤 상황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거기서 잘못한 부분을 찾아내라는 부모들, 아이가 낯선 분위기와 상황에 적응이 안 되어 치료받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무조건 오늘 하루 만에 치료를 다 끝내 달라는 부모들, 하루에 한 번 양치하고, 탄산음료와 사탕을 달고 다니는 아이에게 치가 많아서 치료할 게 많다고 말하면 그럴 리가 없다며 과잉진료한다고 하는 부모들, 토요일에 꼭 오겠다며, 예약을  잡아달라고 해놓고 정작 당일이 되어서는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되면서 그다음 주가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예약을 잊었다며 다시 토요일 약속을 잡아달라는 부모들...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도 넘칠 만큼 많은 일들에 나도, 직원들도 모두 지치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이들은 좋지만,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이제 소아환자는 정말 그만 보고 싶은 마음이다.


소아 환자를 안 본다고 하면 또 배가 불렀네, 성의가 없네 하면서 말이 나오겠지...?

(아이고... 소아환자를 그만 보는 게 아니라 치과를 그만두고 싶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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