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의 사생활 간접 탐험

- "선생님~ ○○는 외계인이에요!”

by 작은 발자국

작은 소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 한다."

그 시절 내가 선택한 건 공부방을 운영해보자 였다.


“내 아이들, 내가 직접 가르쳐보자.”

그 마음으로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훌쩍 지났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 딸을 데리고 시작한 수업은 어느새 중학생까지 이어졌고,

딸은 공부방을 졸업해 지금은 고3 수험생이 됐다.

딸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고, 엄마같은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의 마음보다도 엄마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중3이 된 아들 하나.




같은 학년 아이들을 모아 수업하다 보니, 아들의 친구들이 곧 제자가 되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쭉 봐온 아이들이라 선생님이라기보다 그냥 또 다른 나의 아들들이다.


이 아이들에게서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 듣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진짜 아들’과는 대화가 점점 줄어든다는 거다.

그래도 중3 후반이 되는 요즘은 조금씩 나아진게 보인다.

말이 조금 덜 까칠하고 늘었다는 점!

사춘기란 녀석이 다 그렇듯, 요즘 우리 아들은 자신의 세계에 깊숙이 파묻혀 산다.


집에 오면 방문 ‘철컥’ 잠그고, 얼굴은 식사 때나 잠깐 보인다.

말을 걸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다.


“몰라요.”

“몰라.”

“몰라!”


대화가 될 리 없다.

결국 우리 부부는 이쯤 되면 먼저 말할 때까지 ‘그냥 묻지 말자’로 합의를 본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수가 오락가락하니 우리는 그에 따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방 수업 중엔 오히려 아들의 친구들과 소통이 참 잘 된다.


“선생님, 오늘 학교에서 이런 일 있었어요~”

“선생님, 제가 진짜 짜증났던 게요~”

“이거 어떻게 하면 좋아요?”


수업보단 수다가 주가 되는 시간.

아이들은 학교 이야기부터 고민, 친구 관계까지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자신의 부모님께는 하지 못할 말들까지 나에게는 말할 때도 있다.

그 덕분에 나는 종종 아이들의 사생활 뿐만 아니라, 우리 아들의 사생활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빠진 수업 시간, 아이들이 신이 나서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는 외계인이에요!”(아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으로..)


“왜?


“첫째, 식성이 이상해요!

다들 좋아하는 닭다리 안먹고 퍽퍽한 닭가슴살만 먹고, 참치는 절대 안 먹고, 초콜릿, 망고젤리 다 안 먹어요!”


“근데 마이쭈는 먹는다?”


“네! 좋아한대요 ~ 이상하죠? 완전 외계인!”


(나는 속으로 웃었다. 아이들의 눈에는 이게 참 신기한가보다.)


“그런 걸 네가 어떻게 알아?”


“걔가 다 말해줘요~”


의외로 아들, 말이 많은 녀석이었나 보다.

다른 친구가 거든다.


“그리고 ○○는 엉덩이가 크고 단단해요.”

(이건 나도 인정… 몸에 살보단 근육(?)이 많은 편이다. 최애인 우유, 달걀, 닭고기 덕이겠지.)


“또, 맨날 방 안에만 있어요. 뭔가 만들고 있는 게 분명해요!”

“비밀무기 같은 거?”

"지구인을 몰살할 무기를 조립 중일지도 몰라요!”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들의 엉뚱함이란...


“그걸로 이야기 한 번 써보면 재밌겠다~ 니가 그림도 잘 그리니까 함께~”


“진짜요? 그래볼까요? 히히”


다른 아이는 맞장구치며 낄낄낄.


이렇게 수업은 또 딴 데로 새고, 나는 아이들 입을 통해 ‘나도 몰랐던 우리 아들’을 하나씩 알아간다.




한 번은 물어본 적이 있다.


“○○는 학교에선 어때?”


학교에서는 반장이다.

그 성격에 어떻게? 싶었는데 친구들 말로는 꽤 잘한다고.

선생님들한테도 신뢰가 두텁고, 장난도 잘 치고, 수다쟁이라나?

집에선 말 한 마디 안 하는 아들이, 밖에선 그렇게 활발하다니.

우리 부부는 그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사회생활만 잘하는 스타일이구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딸에게도 들은 적이 있다.

딸 반에 말도 많고 장난기 많은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 아이 엄마가 상담 주간에 담임 선생님께 물었다고 한다.


“집에선 말이 너무 없어요. 혹시 학교에서도 그런가요?”


그러자 선생님이 학교에서의 모습을 들려줬고, 그 엄마는 안도하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정말 다행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엄마의 마음이 뭔지 너무 이해가 됐다.


나도 아이들이 이렇게 속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아들이 어떤 모습인지 몰랐을 거다.

수업하다 보니, 어느새 이 아이들이 내 아들의 일기장이 되어주고 있다.




이제 공부방도 슬슬 마무리할 때가 다가온다.

아이들을 가르친 시간은 결국 내 아들을 더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공부방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내 곁에 남을 것이다.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은 진짜 오래 기억에 남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 기억에도, 너희는 오래 남을 거야. 우리 아들과 함께 자라준 또 다른 아들들아.’


그리고 마음속으로 덧붙인다.
“너희 덕분에, 나는 내 아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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