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아들은 집에서 말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늘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것도 아니다.
다만 저녁밥을 먹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길게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임에도, 대화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내가 이것저것 물어도 단답형으로 말하거나, 금세 귀찮다는 듯 “몰라”라는 답을 던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는 잘하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남편은 새벽같이 출근하기 때문에 아침 시간은 늘 나와 아이들만 함께한다.
밤이 되면 남편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데, 그때 아들의 방문을 두드리며 “아들~ 아빠 잔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방문이 열리고 돌아오는 답은 짧다.
“아빠, 잘 자.”
그게 전부다.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다.
“아빠~ 왔어요~”라는 인사만 남기고 이내 방문은 닫힌다.
어느 날 남편은 열린 아들의 방문 앞에서 말을 꺼냈다.
“아들, 아빠랑 얘기 좀 하자. 우리는 대화가 너무 없다.”
하지만 아들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할 말이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 듯 둘은 얼굴만 멀뚱쳐다보며,
잠시 침묵이 흐르다 결국 남편은 체념하듯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그다음 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이 다시 문을 두드리자 아들이 말했다.
“아빠, 잘 자요.”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낼 봐요~.”
아마 아빠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고작 한 마디 늘린 게 “낼 봐요”라니.
하지만 그 말 한마디가 남편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는지, 그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 아들은 언제쯤 스스럼없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을까.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부모들의 카톡 프로필에 어린 시절 사진이 올라오는 걸 본다.
아마 그 시절의 소통이, 그 시절의 모습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들여다보다 보면 마음이 뭉클하다.
‘이때는 이렇게 귀여웠는데, 이제는 너무 커버렸구나.’
어렸을 때는 키우기가 힘들어 ‘빨리 자기 앞가림할 만큼만 커줬으면’ 하고 바랐는데, 막상 이렇게 훌쩍 커버린 모습을 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다.
이 시절이 빨리 사라지는 게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아이도 물론 고맙고 사랑스럽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작은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 시절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사춘기의 문턱에 선 아들과 나와 남편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배우는 중이다.
닫힌 문 너머에도 마음은 오가고 있다는 걸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