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지역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겨울이지만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한 햇살,
기차역 플랫폼
잠시 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요즘 빠져 있는 중국 배우 겸 가수 류우녕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떤 남자가 갑자기 내 앞에 와서는 기차표를 내미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외국인.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어…?”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기차표를 나에게 왜?
Car No.4…?
그는 아무 말 없이 표의 숫자 4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 하고 한국어로 물었다.
아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 것 같았다.
“아… 저쪽이요.”
영어로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방금까지 중국노래를 듣고 있던 탓인지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려던 건 영어도 중국어도 아닌, 결국 한국어였다.
그 외국인 남자 둘은 내가 가리켜준 방향으로 캐리어를 끌고 가서 서성이며 기다렸다.
나는 다시 이어폰을 꽂았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지?’
그리고 혹시 내가 잘못 알려준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팻말을 다시 보니 내가 있는 곳이 2호차 쪽, 내가 알려준 방향은 1호차 쪽이었다.
‘다시 말해줘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차가 완벽히 그 자리에서 서는 것도 아닐 텐데 그냥 두어도 괜찮을까.
그러는 사이 기차는 약간 지연되었고, 어느새 나는 다시 그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그들도 나를 보았다.
짧은 영어가 튀어나왔다.
“You go there.”
단어 몇 개에 몸짓까지 섞어 “Car number one, two, three, four…” 라며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니, 그들은 바로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스쳐 지나며 “Thank you” 하고 눈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눈으로 인사를 했다.
아이고. 생활 영어 한마디가 이렇게 어렵다니.
‘차가 어디 정확히 서지 않을 수도 있으니 대략 저쪽에서 기다리면 돼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앉아서 다시 생각해 봐도 도무지 뭐라고 해야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영어를 배우면 뭐 하나.
단어를 알면 뭐 하나.
독해가 되면 뭐 하나.
막상 일상에서 필요한 한마디가 안 나오는데.
다시 떠오른 대만 여행
올해 초 가족들과 대만 여행을 갔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며 짧은 대화 몇 마디를 하고, 남편이 마음에 든 옷을 사겠다며 점원과 말할 때 옆에서 도와줬던 순간… 그 뿌듯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의 눈빛도, 남편의 표정도 ‘엄마 대단하다’ 하고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때부터 중국어를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국 드라마를 보며 생활회화를 익히고 OST를 따라 부르다 보니, 어느새 영어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오늘 다시 확실하게 깨달은 것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외국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머릿속에 단어가 가득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그건 ‘배운’ 것이 아니었다.
오늘도 깨닫고, 또 까먹는다.
영어… 나랑 평생 밀당할 생각인가 보다.
평생 초급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
도대체 나는 언제쯤 솰라솰라~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