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재회

by 최미옥

세월이 내려앉은 봉분은 나지막했다. 바야흐로 자연으로 드는 중이었는데 이장을 하게 되었다. 이 외진 산에 터널이 뚫린다고 했다.

친정은 오래전에 고향을 떠났기에 소식을 늦게 접했고 아버지의 무덤은 자칫 무연고 묘로 사라질 뻔했다. 겨울이었지만 봄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 둘째 동생이 독일 주재원으로 발령받고 있던 터여서 출국 전으로 날을 잡아야 했다.

이장도 장례식에 준한다고 해서 조촐하게 제수 음식을 준비했다. 진두지휘하던 당숙이 상주는 곡을 하시오, 하는데 모두 마른 울음을 흉내만 낼 뿐이었다. 슬픔도 애절함도 풍화되었을 세월은 눈물샘을 건드리지 못했다. 긴 세월 영면에 든 망자를 굳이 깨워야 하는지, 굳이 터널을 뚫어야 하는지 떨떠름한 기분이 지배적이었다.

유택이 파헤쳐졌다. 상주들은 물러서라고 하는데 막냇동생은 아버지의 방에 들듯 성큼 들어갔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던 그에겐 어쩌면 부친을 느낄 기회였을까. 인체를 공부한 의사이기에 유골이 낯설지는 않았으리라. 흙구덩이 속에 쭈그리고 앉아 진지하게 아버지를 찾고 있는 막내를, 잘 자란 소나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갑다는 듯 가지를 흔들기도 했다. 오래전 모교로 첫 발령을 받은 언니가 식목일 행사 후 묘목을 심었는데 어느새 큰 나무가 되어 있었다.

이윽고 유골 수습이 끝나고 동생이 아버지를 재현하기 시작했다. 골격을 어림짐작한 후 짚과 솜으로 도닥도닥 여백을 메우고 채운 후 마지막으로 이불을 덮어 드렸다. 늙은 아비의 잠자리를 살피는 효자처럼 구석구석 다독이는 모습이 어찌나 숙연한지, 막걸리를 거푸 마셔서 불콰해진 인부들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화장장으로 이동하는데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함박눈으로 변했다. 차창 밖을 무연히 보고 있자니 사십여 년 세월이 눈밭을 헤치며 다가왔다.

부산의 큰 병원에서 집으로 모시라는 마지막 통보를 받고 오신 날도 겨울이었다. 하루 네댓 번 다니던 버스도 끊길 만큼 눈이 쏟아졌던 날, 택시 한 대가 집 앞에 섰다. 몸 가누기 힘든 아버지를 안방으로 모신 후 엄마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윗동네 아무개 집에 ‘용한 침쟁이’가 왔다 하니 얼른 가서 모셔 오라고 했다. 십리 길을 뛰었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소문을 듣고 있었던 듯, 완곡하게 거절했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전설의 편작을 기다리듯 침구사를 기다릴 엄마를 생각하며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빈손으로 돌아서 가는 길은 아득했다.

중간 동네를 지날 때였다. 길가 스피커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부면장 딸을 보는 사람은 빨리 집으로 보내라고, 쌩쌩 부는 바람 속에서 날카롭게 튀어나온 듯한 말을 챙겨 듣는 순간 노란 커튼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눈앞이 노랗다는 말을 나는 열다섯 살 그 겨울 눈밭에서 경험했다.

우리 집에는 동네 사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휘청거리며 들어서는 나를 부축했고 아버지 앞에 앉히며 인사를 하라고 했다.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잡는데 얼음보다 차가웠다. 무서움이 와락 덮치면서 손을 놓았다. 손끝에 전해 오던 싸늘함은 온몸에 소름을 돋구었고 그 낯선 느낌은 오래도록 지문처럼 남았다. 살아남은 자를 위한 망자의 배려였을까. 할머니는 정을 떼기 위해 무섬증을 준 거라고 했다.

옛일을 더듬는 사이 화장장에 도착했고 잠시 후 전광판에 아버지의 이름이 떴다. 빨간 점멸등이 깜박깜박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오래 잊고 있던 이름을 눈으로 본 순간 울컥했다. 동시에 언니의 통곡이 터졌다. 울기를 주문받던 자리에서 흉내만 내던 우리가 삼일장 치르는 상주처럼 울어대니 당숙이 한숨 쉬며 점멸등을 바라보았다.

“형님요, 허술했던 첫 초상이 영 섭섭하등교. 다 큰 자슥들 모아놓고 보니 좋지요?”

당숙은 시선을 거두며 아버지가 좋다 하시니 그만 울어라, 자꾸 울면 망자에게도 안 좋다고 하셨다. 우리는 동시에 울음을 그쳤다. 실컷 울었기 때문일까. 왠지 개운했다. 철없을 때 이별한 아버지와 재회한 기분이었다.

단 한 번만 하늘에 계신 엄마를 만났으면 좋겠다던 정채봉 선생의 시가 생각났다. ‘엄마를 만나면 살면서 가장 억울했던 한 가지를 일러바치고 엉엉 울고 싶다’ 던 구절이 와닿았다. 엉엉 울고 나니 전에 없이 후련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설움은 산화되고도 남을 세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지 못한 뼈처럼 단단하게 남은 응어리가 있었던 듯, 그마저 눈물에 씻겨나간 것 같았다.

그나저나 땅속에서 긴 잠을 자다 불려 나온 아버지는 변한 세상이 얼마나 얼떨떨하셨을까. 눈부시게 발전한 세상은 귀신의 혼도 쏙 빼놓았겠는데 괜찮으실까. 산골짜기 외딴집에서 공동주택으로 이사했는데 적응은 잘 하실라나, 우리의 걱정이 이어지자 어머니가 ‘너그 아버지는 사교성 밝은 양반이라 외려 좋아할 것.’이라 해서 모두 웃었다. 어머니가 그렇다 하시니 우리도 마음 편하게 특별한 하루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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