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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비콩 Feb 02. 2024

2•학교 폭력 가해자를 찾아갔더니

성인이 되고 난 뒤, 용기를 내다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이후 소중한 내 친구들을 만나고 교사를 꿈꾸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트라우마는 옅어져 갔다. 사람은 무의식 중에서 자신의 두렵고 아픈 부분을 회피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되돌아보며 미련을 가지기도 한다. 가끔씩 내 의지와 상관없이 sns로 과거 날 괴롭혔던 애들을 찾아보았다. 공개 계정인 경우, 팔로워를 타고 들어가 다른 애들의 소식도 확인했다. 누구는 예쁘게 연애를 하고 있었고, 누구는 벌써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한다. 정의하기 어려운 불쾌함을 느끼며 '알아도 기분만 나쁘지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은 왜 그럴까?' 생각했다. 그러는 도중 나를 가장 주도적으로 괴롭혔던 한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발견했다. 소개글에는 자신이 직업적으로 운영하는 아이디가 태그 되어 있었다.


https://naver.me/G0lZqFd6

 그 친구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는 샵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같이 다녔던 학교가 시골이었기 때문에 서울로 이사 온 나는, 그 아이들과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지내던 서울 00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을 줄이야. 내 생각보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어서일까, 고객 리뷰에 너무나 친절하게 답변한 모습을 보아서일까...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나고 힘들어서 1시간 동안 멍하니 그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한때는 단둘이 노래방도 가고 스티커 사진도 찍을 정도로 친했던 너, 나중엔 날 죽고 싶을 정도로 몰고 간 잔인한 너를 생각하면서 '언젠가 한 번은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 동창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를 찾아, 그 친구를 지정해 헤어 예약을 했다. 내가 가장 바란 결말은 먼저 나의 이름을 알아보고, 기입된 연락처로 연락을 해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직접 마주 보지 않더라도 전화를 통해서라도 그때 받지 못한 사과를 받고 싶었다. 철이 없어서 그랬다거나 후회했다는 그런 뻔한 말을 기대했다. 말뿐인 사과를 받아 뭐 하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 나는 한 마디도 대응하지 못한 채 참다 참다 전학 갔기 때문에 그런 뒤늦은 사과라도 받고 싶었다. 물론, 드라마에서처럼 닥치는 대로 깽판 치러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같이 가주겠다고 한 내 사람들과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많아 혼자 조용히 다녀오기로 했다.


 예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샵에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가 예약한 날 바빠서 다른 디자이너가 담당해도 되겠냐는 연락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날을 바꾸거나 시간을 바꿔서라도 그 친구로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아, 알고서 의도적으로 피하는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 개인적인 연락은 오지 않았고, 당일이 되었다. 도망치듯 전학 가고 난 뒤, 거의 10년 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달달 떨리는 입술을 진정시키며 발을 내디뎠다.


 역시 인생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샵에는 다른 직원과 손님은 없고, 오직 그 친구와 나뿐이었다. 손님 대하듯 존댓말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날 대하는 그 친구의 태도에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왜 왔는지도 까먹을 만큼 당황했다. '날 설마 못 알아보는 건가? 혹시 내가 사람을 착각하고 잘못 찾아온 건가?' 이런 생각이 들던 찰나, '여기까지 어떤 마음으로 왔는데! 할 말은 해야 해!' 하며 용기 내 물어보았다. '나 몰라?'


 30분가량 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침묵과 꽤 많은 대화가 이어졌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참 싫어하는 말인데, 그 말이 딱 맞았다. '나는 기억이 안 나지만, 네가 상처받았다면 미안해'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은 또 없을 것이다. 최근 유행했던 드라마 '더글로리' 박연진역의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가 걔한테 어떻게 했더라? 심하게 괴롭혔나?'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한 세상이 끝나는데 정작 그렇게 만든 가해자는 기억조차 못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시종일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하는 사람을 붙잡고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드라마 더글로리 박연진(배우 임지연님) 사진

 미디어 매체에서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으며, 뉴스 기사에도 여전히 심각한 학교폭력 사건들이 쏟아진다. 이를 접할 때마다 나는 사회의 아픈 단면을 마주하는 것 같아 슬프고, 교사로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가정교육의 문제일 수도, 어울리는 친구들의 부정적인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허구적 문학, 예술 작품처럼 통쾌하게 복수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트라우마 그늘 속에서 이만 벗어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고, 우리는 충분히 잘 견뎠으니 '그때 -할 걸' 후회하지 말자고. 혹은 지금 당장 아프다면 혼자 참지 말고 누구에게든 도움을 요청하라고. 도와주지 않아도 끝까지 자신을 지켜달라고."


 다 잊고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 큰 복수라는 말이 예전엔 공감도 안 되고 싫었다. 죽도록 미운 그 사람들을 용서해야만 된다는 또 다른 부담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남을 싫어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 궁극적으로 손해라는 것을 안다. 적당히 미워하자. 스스로가 좋아질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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