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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Mar 04. 2023

인간 박찬호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박찬호

박찬호를 아는가? 만약 안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박찬호는 누구인가? IMF의 영웅?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투머치토커 아저씨? 저마다 다른 대답이 박찬호를 가리킬 것이다. 앞서 말한 세 가지의 답 중 내가 생각하는 대답은 없다. 나에게 있어 박찬호는 야구선수 박찬호가 아닌 인간이다. 인생의 굴곡을 모두 맛본 인간, 인간다운 인간. 


어느 순간 박찬호가 투머치토커라는 말을 듣고 생각한 게 있다. 그렇게 많은 말을 하면서도 논란이 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박찬호였고 그렇게 말을 많이 해도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았다. 나는 그때 박찬호는 왜 말을 많이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야구하고 TV프로그램에만 나오는 박찬호가 아닌 인간 박찬호를 보고 싶었다.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라는 책에서 그의 모습,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었고 야구인이 아닌 그를 마주하며 존경심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저자 박찬호는 인생과 흡사한 스포츠인 야구를 통해 인생의 굴곡짐을 표현해 나간다. 야구를 둘러싼 환경이 자신에게 준 영향, 더 나아가 박찬호의 야구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드러내는데, 이를 통해 홈에 들어와 환호하고픈 우리들에게 조언을 건넨다. 


그가 책에서 펼치는 이야기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자기 자랑만 하는 글이 아니란 것이다. 어떤 계기로 본인이 이런 생각을 하고 그걸 실천으로 옮기며 발전할 수 있었는지를 써 내려가며 독자에게 성장, 배움이라는 단어를 던진다. 그가 던진 단어는 우리가 기억하는 전성기 시절의 100마일 공처럼 가슴속에 머물러 있다. 책 제목이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인데, 박찬호는 현역 중반쯤 트레이드마크였던 100마일 공 위주의 피칭을 버리고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했다. 그는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파괴해 나가며 악착 같이 살아남았다. 끝, 즉 마지막에 대한 두려움과 낯섦만을 바라보기보다는 시작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길을 바라보라는 제목으로 보인다. 박찬호는 이렇게 고군분투하던 미국에서 가끔 보이는 한국 사람이 그렇게 반가워 보일 수 없었다고 밝힌다. 지금 그를 나타내는 투머치토커라는 별명은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던 그의 슬픈 과거를 나타내는 별명인 것이다. TV화면 너머로 비친 박찬호는 화려했지만 그 뒤의 박찬호는 외로운 인간이었다.


외로웠던 박찬호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 에 이 '최초'라는 단어 속에는 보이지 않는 사명감이 깃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당시 한국이 무시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느꼈다 고백하며 자신이 못하면 자신이 욕을 먹는 게 아닌 한국이 욕을 먹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악착 같이 살아남으려 노력했다고 밝힌다. 어쩌면 그의 사명감은 의무였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땅에서 의무적인 사명감으로 홀로 견디는 그의 모습을 보면 최초라는 영광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사명감이 박찬호를 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박찬호의 사명감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박찬호의 이름은 박찬호이기도, 코리안이기도 했다. 우리는 밖에서 볼 때 개인이 잘못하면 개인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잘못을 한 개인이 속한 단체가 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게 무의식적으로 습관화되어 있다. 박찬호는 그걸 알았다.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했고 스스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려 발버둥 쳤다. 


여기서 말하는 발버둥은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다. 스스로 바꿔나가고 경험하며 배운 것들을 실천하며 가진 것들을 쏟아부어야 하는 그런 노력. 박찬호는 124승을 목표로 삼아 노력을 수없이 했고 마침내 124승 고지를 밟았다. 이렇듯 아시아 투수 최다승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다. 그의 목표였으며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금의 박찬호가 만들어진 것이다. 123승으로 박찬호가 뛰어넘고자 했던 노모 히데오는 박찬호가 경쟁자가 아닌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노모의 모습을 보고 변화를 꾀하는 박찬호의 발버둥이 글로 그려지며 여운을 준다.


124승이란 목표를 일궈낸 박찬호는 한국으로 돌아와 야구인생을 끝냈다. 끝난 뒤에 느끼는 공허함, 낯섦을 털어놓으며 박찬호는 이렇게 말한다. "그만두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다시 시작할 용기, 잘해왔던 것들을 내려놓을 용기가 그만두는 데 필요했다. 에세이의 방식으로 담담하게 쓰인 박찬호의 글이 끝날 때가 된 것으로 보였다.


학교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인생의 굴곡을 경험하곤 한다. 때론 흔들리며 무너질 위기에 처해 방황하는 경우도 있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럴 때 나아갈 방향을 제공해 주는 이가 있다면 기댈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스승이라고 부른다. 스승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배워나가며 삶의 질을 윤택이 할 수 있다. 어쩌면 박찬호는 쉽사리 기대지 못한 자신에게 기대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이 하지 못해 다른 사람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뛰어넘길 바라며 야구를 뒤로한 채 새로운 시작을 했다.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그는 지금도 후배들을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그는 한국 야구계에 있어 위대한 스승이자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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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박찬호를 아는가? 만약 안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박찬호는 누구인가? IMF의 영웅?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투머치토커 아저씨? 저마다 다른 대답이 박찬호를 가리킬 것이다. 앞서 말한 세 가지의 답 중 내가 생각하는 대답은 없다. 나에게 있어 박찬호는 야구선수 박찬호가 아닌 인간이다. 인생의 굴곡을 모두 맛본 인간, 인간다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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