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용기에서 희망을 보다.

by 박민찬

오늘, 그러니까 2026년 3월 25일. 성공회대학교에서 <녹색평론> 독자 모임을 열었다. 우리에게 편리를 가져다준다던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삶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고, 일상 속으로 스며든 기후위기가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미약하게나마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성의 부름에 응답해 진정으로 인간된 삶을 묻고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오늘 진행한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마치고 난 후의 소회다.


김정현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이 ‘문명’에는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한계(금기)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 같다.”(김정현, 2026) 전쟁이 터졌음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주식계좌에 미칠 영향만을 생각하고, 인간 자신을 쓸모없게(빌 조이, 2000) 만드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찬양하곤 한다. 이런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볼 때마다 깊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이뿐이랴, 대학이라는 학문의 세계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내딛던 중,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사고 없이 수용하는 이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교수님들조차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것에 조건을 두시는 걸 넘어 편리와 효율이라는 덫에 넘어가시기 시작했다. 인공지능과 자본주의, 그리고 제도에 포섭된 인간은 결국 같은 지점에서도 만나는데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을 학생들에게도 권장하는 일부 교수님들의 모습은 내가 아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 때문일까. 인공지능과 자본주의가 만난 세상 속에서 내가 <녹색평론>을 통해 주창하는 가치는 생각보다 외면당하기 쉬웠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 ‘기본소득’, ‘진정한 자유인’과 같은 가치가 “좋은 말이지만, 실현하기 어렵”다는 말로 뭉뚱그려지며 “현실이 이러니 순응하”라는 말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이상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빛으로 남길 바라며 말이다. 김종철 선생님이 <녹색평론>을 구상하신 이유로 “지극히 미약한 정도로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김종철, 1991)다고 말씀하셨던가. 나 역시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동체에서 우리의 희망과 새로운 문명에 대한 가능성을 논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오늘의 모임은 첫 시작이었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함께한 네 명의 구성원들은 김종철 선생님의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와 김정현 선생님의 <상상력과 용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항상 느끼지만, 같은 글이라도 여럿이 함께 읽으면 사뭇 다르다. 내가 이렇게 읽은 글이 다른 이에게는 저렇게 읽힐 수 있는 것 아닌가.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라고는 했지만, 그 안에 실린 글들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의 흔적을 함께 나누는 것에 모임의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고민을 적극적으로 나눠주신 분이 계셨고,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모습을 돌아보는 분도 계셨다. 학교에서 지나가다 얼굴만 본 사이임에도 이렇게 작은 공동체에서 서로의 삶을 넘나드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은가.


<상상력과 용기>를 읽고 많이 나온 키워드는 주식과 전쟁이었다. 하기야, 전쟁이 발발하고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지금, 산업문명에 침식된 사람들은 전쟁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상처에 시선을 쏟기는커녕 자신의 계좌에 어떤 숫자가 찍혀 있을지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읽기 모임에 함께해 주신 분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보며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고 느꼈다. 이 외에도 이야기가 사방으로 퍼져 의미 있는 이야기가 여럿 나왔지만, 내가 느낄 땐 금진적인 문명의 전환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삶을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과, 그것을 실행하고자 하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한데, 산업문명의 소용돌이 안에서 태어난 우리들이 그것을 상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기술과 소셜미디어가 세상을 뒤엎기 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다. 미디어의 파도가 아닌 흙바닥에서 뛰놀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우리가 문명의 전환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깐 멈칫했던 기억이 난다.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를 나누는 시간 역시 모두가 진지한 자세로 임해주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김종철, 1991)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서로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김종철 선생님이 창간사를 펴내신 1991년으로부터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대학생의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불안, 취업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속화되어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던 게 아닐까.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전혀 낯설지 않은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는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이상이 되었다. 이반 일리치가 말하였듯 진보의 화신이라 추앙받았던 프로메테우스가 아닌 에피메테우스적인 인간이 되어 ‘희망’을 품자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거대해지지만, 제도나 기계에서 나오는 결과로서 여겨지는 ‘기대’보다는 ‘희망’을 통해 제도의 상투성에 맞서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이 다 끝나고 돌아보는 지금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모여주셔서 기쁘지만, 스스로 아쉽다는 생각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더 많았더라면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조금 더 얹을 수 있었을 것이고, 각자가 품고 있는 고민을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 시작을 열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녹색평론>을 함께 읽으며 각자가 지닌 상상력과 그것을 시행하고자 하는 용기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 함께한 사람들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고민을 안고 함께 나누러 와줬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상을 상상하고, 실현하기 위한 용기를 모임에서 보여준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었다.


모임이 다 끝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녹색평론>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오늘에서야 느꼈다. 정의의 길로 가는 발걸음이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다는 걸 말이다. 서로에게 의지하여 길을 걸어가는 지금의 꿈만 같으면서도 많은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서로 얼굴을 맞대는 따스한 순간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나눴던 눈빛들이, 나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보고 곁을 내어주었던 배움의 공동체들이 차례대로 내 머릿속에 머문다. 그 중에서도 모든 배움의 끝이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내게 말씀해 주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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