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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Apr 12. 2024

벚꽃 한 장

1.

  교정에 벚꽃이 피고 지고 있다. 흩날리는 벚꽃 앞에서 아이들은 사진을 찍거나 떨어지는 벚꽃을 손으로 잡으며 봄날 속에 있다. 벚꽃이 아름다운 것은 자기답기 때문이다. 피어날 때와 질 때를 알고 자연의 운명을 따르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정직하게 하기 때문이다. 벚꽃 아래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아이들에게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가장 '나'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해야 하는 일을 성취함으로써 삶의 효능감을 느끼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느끼고 해 보는 경험을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아마, 벚꽃도 저렇게 희고 붉은 꽃을 피워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이지 않았을까. 때로 일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무기력하고 우울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할 수 있다. '그렇다'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아가면서 삶의 복잡함과 모순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동시에 느낄 때, 리석음과 부끄러움이 묻어 있는 마음으로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을 밀고 가는 우리의 모습을 볼 때 나는 내가 어김없이 이 일을 좋아하고 있음을 느낀다.

     

2.

  떠나온 학교의 두 아이에게 문자를 받았다.


"이건 며칠 전에 쓴 글인데, 그냥 저 이렇게 컸다고 알려드리고 싶어서.. 보내요! 저에게 구체적으로 쓰는 법에 대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창작을 듣기 전에는 용기가 부족해서 짧은 시구들로만 글을 썼어요. 그런데 요새는 글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요!

  건강하셔야 돼요 쌤!! 꼭이요. 늘, 사랑과 희망의 증거예요, 선생님은."


"저는 이제야 조금... 스스로가 좋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좋은 어른이 될 것 같다는 것도요. 이런 섣부른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건 닮고 싶은 좋은 어른이 있어서일 테고, 그 어른에게서 희망을 배웠기 때문일 거예요.

  몰라도 사랑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여전히 희망을 외치는 힘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시 남은 공간에서 좋은 어른이 되려 애써볼게요.

 뵙게 된다면, 그때 또 다른 책을 선물해 주세요. 선생님을 닮은 책으로요."


  나는 지난 추운 겨울을 이 문장들로 버틸 수 있었다. 사랑하고 헤어지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상처를 끌어안으면서, 매일 망가지는 나였어도 무너지는 누군가의 곁에 있으려고 애썼던 작은 나날들이 헛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랑과 희망을 가르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랑과 희망의 증거'에 대해 생각한다.       


3.

  나무 아래서 나는 한 아이에게 벚꽃 한 장을 선물로 받았다. 그 작고 가녀린 꽃잎 한 장. 나는 교장실 컴퓨터에 그 꽃잎을 붙여두었다. 그리고 활짝 문을 열어둔 교장실을 지나가는 그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녁 무렵 퇴근하려고 교장실 불을 모두 끄자 그 꽃잎 한 장이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에서는 오래 빛나고 있을 벚꽃 한 장.   

 

  나는 여전히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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