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쓰기 수업에서 어떤 아이는 희망의 목록을 이렇게 적었다.
- '스스로 답을 얻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
-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 '다수만큼 소수도 챙기는 특별한 생각과 마음을 갖고 싶다'
아이는 롤모델이나 전문가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얻은 사람'이라고 썼다. 이 사람은 인생에서 자신만의 질문이 있었던 사람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분투했던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의 노력과 도전, 실패와 행복의 순간들은 모두 누군가의 요구와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아이가 쓴 '스스로'는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아이는 그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조언과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아이는 그 사람이 찾은 답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품었던 질문에 대한 그 사람만의 답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만남과 이야기를 통해 그와 하나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아이도 그 사람과 같이 질문이 있고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이 작은 아이의 위대한 마음을 자꾸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만남과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하나의 세계로서 서로 만나고 있는가. 그 만남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서사를 말하고 있는가.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이 품고 있는 기대와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장벽들과 가장 아름다운 실패를 다루고 있으니까.
2.
어쩌면 아이가 말한 '그 사람'은 아이 밖의 사람이 아니라 결국 아이 안에 있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 아이의 희망의 목록은 먼 훗날 아이가 성취하게 될 어떤 결과가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아이가 이미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좋은 연장이 된다. 희망은 어떤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삶의 무기가 된다.
3.
아이는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몸에 난 작고 큰 상처들을 본다. 오늘 아침에는 부르튼 입술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를 간직한 채, 앞으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공부하고 연마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상처 입었지만 상처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그의 마음속 단단한 다짐이 강철처럼 자라고 있으니까.
4.
아이는 마지막으로 '다수만큼 소수를 챙기고 싶다'라고 말한다. 다수에게 향하는 애정과 사랑처럼, 그만큼 소수에게 다가가는 다정과 돌봄을 아이는 따뜻하게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마음이 '특별하다'라고 썼다. 아이가 말한 '특별함'에는 아이의 어떤 태도가 담겨있다. 눈앞의 일들이 언제나 큰 우리들은 이런 생각과 마음을 계속 기억하고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는 행동할 수 있다.
아이는 '특별한'이라는 단어에 자신의 다짐을 꼭꼭 눌러 새겨 놓았다.
5.
학교 담장에 장미가 피었다. 봄에 피어난 모든 꽃들이 떨어지고 난 후에야 장미는 가장 붉은 색깔로 한 번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의 붉은 마음을 생각하며 더 좋은 교사가 되기를,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런 희망을 나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