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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12. 2022

우리 모두 시인되기

시 창작 수업 종강하는 날

1학기 시 창작 수업이 끝났다. 종강하는 날이면 언제나 부족했던 가르침보다 더 많이 배운 아이들과 내가 주었던 사랑보다 더 많이 이 수업을 사랑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들은 내게 편지를 주었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뜻밖의 환대에 조금 놀라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강생 중 한 명이었던 '민채'가 우리 모두에게 종이 한 장을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는 옛날 타자기로 친 것 같은 글씨로

수강생들의 이름과 수업시간에 내가 한 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내가 이런 말들을 수업 시간에 했구나. 기억나지 않는 말도 있었으나 거기에 진심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 꽃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나와 꽃 사이에서 아름다움이 태어나는 것이다.  

  - 시는 어긋나게 하는 것이다. 뒤에 올 말이 예측 불가능하다.  예측한 것으로부터 어긋나면 우리는 그때서야 비로소 생각하고 느끼기 시작한다.

  - 부단히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려는 사람 같아요.

  - 시에 나의 무엇을 흘려보낼 것인가



시 창작 수업의 목표는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의 '목표'란 언제나 성취가 아니라 경험을 말한다. 어떻게 시인이 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시인되기를 경험하게 할 것인가? 경험은 구경이나 감상이 아니라 참여이다. 벌판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벌판에 서 보는 것이다. 벌판에 서서 햇살을 만나고 비바람을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 경험의 끝에서야 비로소 하나의 삶의 문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시인되기'를 경험했다.

아직 가르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이 남았으나

민채가 표지에 '우리가 시인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라고 자연스럽게 쓴 걸 보니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을 시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수업의 첫 시작에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를 쓰는 것보다 시적인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영화 <시>의 양미자 씨처럼 겨우 시 한 편을 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학기 동안 시 창작 수업의 아이들은 시를 네 편이나 썼다.


이 아이들은 삶의 어디에서든 어느 순간이든

하얀 종이를 꺼내고 연필을 손에 쥐고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 안에서 흘러넘치는 그 무언가를 시에 흘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졸업을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시 창작 수업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으니.


아이가 종이의 표지에 적은 글을 옮겨 적는다.

민채야, 너는 이미 시인이구나



 시 창작 시간에 오고 가던 문장들을 종이 위로 다시 붙잡아 살포시 올려둡니다. 기울인 글자들은 시적인 순간으로 다가서는데 도움이 될 만한 징검다리예요.  

  모든 말을 담진 못 했지만, 잊지 않으려고 버둥거렸던 몇 개의 문장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친구들의 말을 많이 적고 싶었는데, 많이 옮기지 못해 아쉬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어떤 형태로든 분명히 존재할 거예요. 이번 겨울 즈음 들춰보면, 어떤 문장이 우리 안의 웅크리고 있는 시인을 깨울지도 모르겠네요.

    2022년 봄과 여름에, 우리가 시인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무더운 여름날 자꾸 멈춰 서게 되는 시 창작 마지막 시간에, 민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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