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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15. 2022

나의 예술 선생님들 1.

고3 예술 수업을 마치며

1.  

  어제 퇴근하는 길에 고1 아이들이 모여 있는 걸 봤다. 차 문을 내리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가위 바위 보 해서 가방 들어주기를 한다고 했다. 스무 명이나 있었는데, 진 아이는 스무 개를 다 들어야 하는 걸까? 안녕하고 차를 몰고 내려오는데 아이들이 뒤에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차에서 내려 왜 달려오는 거니라고 물으니 아이들이 말했다. "교장 선생님, 인사하고 싶어서요." 우리도 아이들처럼 그냥 인사하고 싶어서 얼굴을 보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달려가기도 하는 걸까? 물싸움을 했는지 흠뻑 젖은 아이들이 7월의 초록 나무 아래서 여름처럼 명랑하게 웃으며, 다정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두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도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한 학기 애썼어요. 모두." 아이들이 나를 향해 환하고 싱그러운 웃음을 보내주었다. 아이들로부터 내게 오는 이 투명하고 순수하고 선한 기운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2.  

  고3 예술 수업 종강을 했다. 봄에 라넌큘러스를 한 송이씩 선물하며 시작한 수업은 여름에 리시안셔스를 한 송이씩 선물하며 끝이 났다. 라넌큘러스의 꽃말은 매력이고 리시안셔스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마지막 수업은 한 한기 동안 삶을 예술로 만들었던 과정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스물네 명의 아이들이 순서 없이 한 명씩 무대에 올라가 이야기를 했다. 여덟 통의 손편지를 쓴 아이도 있었고, <여름을 흩어서>라는 곡을 작곡하고 연주를 들려준 아이도 있었고, 짧은 영상을 만든 아이도 있었고, 눈물을 모아서 가져온 아이도 있었고, 노래를 불러준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 수업은 결과와 작품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과정과 삶으로서의 예술을 이야기해왔다. 자신의 삶으로부터 출발하기, 그러나 언제나 그 삶을 조금 넘어가 보기! 아이들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났던 질문과 고민, 생각과 느낌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모두 진짜 자기 이야기였고 거기에는 모두 '나'가 있었다. 

  


예술 수업 공유회 - 학생들의 이야기와 작품들


3.    

  진현이의 예술은 <아이돌 되기>였다. 진현이는 우연히 어렸을 때 사진을 보다가 자신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배드민턴 채를 거꾸로 잡고 가수처럼 잔뜩 포즈를 잡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 아이는 깨달았다. 자신이 가수가 꿈이었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있고 있었던 그 사실을.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내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주체가 아니라 보고 듣는 대상이 되어버린 거죠." 진현이는 자신의 마음 안에 그 열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이 수업의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진현이의 표현에 따르면 '표현에의 열망'이다. 진현이는 '표현할 수 있는 주체'로 이제는 '행동'하고 싶다고도 했다. 


  진현이는 작년 시 창작 수업 때 '자신의 마음 안에는 밖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쌓여 있는 슬픔이 너무 많다'라고 썼다. 한동안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끌어안고 살았는데 아이가 그 슬픔을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어떤 매체와 방법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후로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 수업을 시작하고 올해 5월, 진현이와 나는 도서관 앞 벤치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때 아이는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해주고 글쓰기를 시작할 용기를 주셨던 담임 선생님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떠나보낸 후였다. 이른 아침, 벤치에서 아이는 바다처럼 울었는데 그때 나는 아이와의 긴 대화 끝에 글쓰기를 나와 함께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를 슬픔 바깥으로 나오게 해주고 싶었고 슬픔의 옆에 다른 것들을 조금 놓아주고 싶었고 담임 선생님의 마음을 계속 이어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진현이와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시작하고 출발할 있게 되었다. 시작과 출발의 마음은 예술의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 어딘가에 예술이 있다면, 예술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언가 시작하고 출발하려는 모든 사람들 속에 있을 것 같다. 


  지금 나는 아이의 첫 글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내게 곧 보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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