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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17. 2022

헤어질 결심, 사랑의 말

당신을 위한 일을 할게요

1.

  시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가장 사랑에 가까운 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온갖 말들의 배반과 오해 속에서도 순정한 언어를 발견하려는 시의 시도는 그래서 언제나 실패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의 실패는 테두리 밖 진실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예정된 것이기 때문에 값지기도 하다. 현실을 유지하고 지금의 인식과 감정에 만족하며 살지 않으려는, 진실과 이면을 찾으려는 모험은 언제나 상처받지만 거기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것들은 짧지만 고통과 불행의 역사를 이기는 긴 시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시는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결심과 가장 닮아 있다.  나와 너의 사랑에 대한 가장 정확한 말을 찾기 위해 거듭 부정하고 부정하며 언제나 기꺼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출발하려는 마음, 그 애처롭고 애틋하고 헌신적인 결심과 행동을 나는 알고 있다.

  또한, 그 사랑의 말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다름 아니라 사랑하는 당신을 위한 일이 무엇이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결단하고 움직여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준다. 사랑의 말은 사랑의 마음이며 동시에 행동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상태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 당신을 당신답게 존재하게 하기 위해 결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가 그랬던 것 같다.     


2.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봤다. 병원 진료가 있어 이른 아침에 영화를 봤다. 아침의 영화관은 밤의 영화관과 같다. 불이 꺼지고 오직 세상에 단 하나의 세계만이 내 앞에 펼쳐진다는 사실만으로 영화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좋은 영화는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그 세계에 참여하고 싶게 만든다. 질문하게 하고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정을 체험하게 한다. 한 때 나는 영화를 그렇게 봤다. 그리고 오래 영화를 보러 가지 못했다. 일상과 생활, 문제와 해결의 삶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것은 2015년 <스틸 앨리스>였던 것 같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언어, 기억, 사람, 결국 자신마저 잊어가는 어떤 언어학 교수의 이야기였다. 나는 병이 깊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존엄과 품위와 품격을 지키려 노력했던 앨리스를 오래 생각했다.  


3.  

  해준과 서래는 비슷한 것이 많다. 처음 경찰서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서래는 남편이 산에 가자고 했으나 자신은 산을 싫어한다고 말하며 통역기 앱을 통해 해준에게 이렇게 말한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난 바다가 좋아요"


  그러자 해준은 스치듯 지나가는 말처럼 "으음, 나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래는 못 알아들었거나 조금 놀란 듯 "네?" 라고 되묻는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해준은 서래에게 당신이 '꼿꼿해서' 좋다고 말하며 '우린 비슷한 게 많다'라고 말한다. 꼿꼿함은 해준이 가지고 있고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해준이 '나는 붕괴되었다'라고 말한 이유는 자신의 꼿꼿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서래와의 사랑을 위해서 그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삶의 존재 이유와 직업적 자긍심을 포기했다. 그러니 해준은 '무너지고 깨어진 것'이다.

  어쩌면 서래가 마지막 음성 파일의 제목을 붕괴의 사전적 의미인 '무너지고 깨어짐'으로 한 것은 무너진 해준의 존재를 다시 세워주기 위한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산에서 해준이 한 일을 이포에서 서래가 똑같이 한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를 좋아하는 것이 같을 수 있고 특별히 보슬비보다 장대비를 더 좋아하는 것까지 같을 수도 있고, 흙과 땅과 바람과 햇살의 향기를 지닌 나물 반찬을 함께 좋아할 수도 있고, '안네의 일기'나 '빌러비드'를 읽은 경험이 같을 수 있고, 가로등 불빛이 내린 어두운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거나, 장어는 싫어하나 해장국을 좋아하는 것이 같을 수도 있다. 비슷한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한 경험이 같을 수도 있고,  그리움과 같은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같을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을 수도 있으니 그 이면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도 비슷할지 모른다.  


  비슷하고 같은 목록이 많다는 것은 그 둘이 공동의 경험과 감각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건 앞으로 서로에게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할 일이 많다는 것이고 서로에게 신기해하고 감탄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과거의 비슷하고 같은 것에서 나아가 미래의 비슷하고 같은 것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앞으로 함께 해 볼 수 있는 것들을 무한히 궁리하고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그들은 모든 시간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해준과 서래는 그럴 수 없는 관계였다. 그리고 서래는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행동한다.  

 


4.

  영화의 마지막 부분, 서래는 해준에게 당신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준은 서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언제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느냐고 한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서래는 절박하게 중국어로 말하고 해준은 간절하게 한국어로 말해달라고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말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준은 파도가 거세게 밀려오는 바다 앞에서야 탄식하며 알게 된다.

자신이 서래에게 했던 말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라는 말이 서래에게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로 들렸다는 것을. 서래는 폰을 아무도 찾지 못하게 깊은 바닷속으로 버리라는 해준의 음성 녹음을 그와 헤어진 이후에 반복해서 들었을 것이다. 그가 보고 싶을 때, 그가 그리울 때마다.

  그 말은 유일하게 그녀를 이해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었으며 그녀를 위해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포기한 해준의 사랑의 마음이었다고 서래는 이해했으니까.


  누군가에게는 어떤 말이 모두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일 때가 있다.  

우리는 한 때 모두 사랑의 말을 가진 적이 있다. 오늘의 날씨와 내일의 계절도, 아침의 장미와 저녁의 노을도, 어린 시절의 슬픈 이야기도,  차가 막힌다는 말도,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고 싶냐는 말도, 잘 지내라는 말도, 아프지 말라는 말도, 읽었던 책의 문장과 들었던 노래의 멜로디를 전하는 말에도, 감사하다는 말도, 미안한다는 말도 모두 사랑한다는 말일 때가 있다.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위한 일을 하려는 모든 마음의 말은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문장들이다.  


5.

  이포의 시장에서 해준과 서래는 각자의 아내와 남편과 함께 13개월 만에 재회한다. 그때 서래의 표정, 해준의 신발을 내려다보며 왜 신발이 바뀌었느냐고 표정으로만 물을 때 서래의 얼굴은 너무 애틋하고 간곡하고 슬퍼서 뭉클했다.


  서래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으므로 더욱 그 아픔은 깊고 컸을 것 같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을 감당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상처와 아픔에만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사랑할 때 우리는 가장 많은 나의 모습을 알게 되고 가장 많은 당신의 내면을 알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앎으로 우리가 따뜻하고 지혜롭고 강하게 '당신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기를, 내가 그럴 수 있기를 다시 희망해본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완전히 비극과 불행, 죽음과 상실로만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여러 모습 가운데 '사랑의 품위'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엄과 품격'을 동시에 지켜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온 후에도 오랫동안 나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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