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철원 Jul 27. 2022

당신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 아직 몰랐던 마음에 대해 쓰기 

1

  시 창작 수업의 글쓰기 주제는 인생의 거의 모든 순간들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와 자전거를 처음 타던 날과 비가 내리던 날의 기억과 엄마가 처음으로 울던 날과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우리가 삶에서 만났던 혹은 앞으로 만나게 될 순간들이다. 

  글쓰기 주제를 칠판에 적을 때 아이들은 조금은 떨리고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주제가 적히고 나면 바로 글을 쓰는 아이도 있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아이도 있고 긴 한숨을 내쉬는 아이도 있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도 있고 연필 끝을 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리는 아이도 있고 빈 종이위에 그림을 그려보는 아이도 있고 벌써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도 있다. 그 때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고유하고 개별적이다. 

  나는 아이들이 글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의 이 시간을 사랑한다. 그 머뭇거림과 주저함, 그 강렬한 불꽃과 잔잔하고 부드러운 상념, 그 복잡하고 모순적인 일렁이는 마음, 알 수 없는 생각과 감정을 골똘히 떠올릴 때 눈동자를 사랑한다. 이번 글쓰기는 망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안되겠어요, 오늘은'이라고 속삭이는 아이의 목소리를 사랑하고, 할 말이 많다는 듯 나를 향해 빙긋 미소지어 보이는 아이의 따뜻한 얼굴을 사랑한다. 글을 쓰기로 선택하고 결정한 순간, 그래 이것으로 하자라고 말하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물 때 그 표정을 사랑한다.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아이들은 바람이 불어 창문이 흔들려도 쉬는 시간 복도에서 떠드는 다른 수업 아이들의 발걸음에도 종이치는 소리에도 첫눈이 내려도 가만히 손에 펜을 쥐고 종이위에 무언가를 적는다. 에어컨 소리도 크다고 꺼버리고 더워도 문을 닫고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한다. 펜이 종이 위에 닿는 소리만 교실에 가득하다. 이제 글쓰기의 순간에 들어간 것이다. 아이들 마음 속 작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2.    

  작년 시창작 수업, '당신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주제의 글쓰기에서 채윤이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노작 시간이 끝나고 땀을 잔뜩 흘리며 고등학교 동 앞에 도착했을 때, 내가 몇 번이고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앉고 그래도 또 다시 걷던 걸 지켜봐 준 너는 말했지.

  우리가 이만큼 왔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나는 글을 쓰면 어디에도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이 느껴져. 하지만 꼭 고꾸라질 것 같기도 해. 왜냐하면 상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막히고 어떤 때에는 아예 걸음조차 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런데 의외로 가장 싫어하는 일-언덕 올라가기-를 할 때 나의 한계를 네가 깨부숴준 거지. 마치 글을 쓰는 순간처럼. 철원쌤이 말씀하신 '시적순간'이 바로 지금이구나 싶었어. 

  그때 비로소 알았는데, 나는 네가 했던 수많은 말들을 내 마음에 수놓고 간직하고 있었어.  


  너에게 주려고 편지를 썼지만 끝내 전하지 못했던 마음들에 대해 쓰면서 아이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네가 했던 수많은 말들이 내 마음에 단단히 간직되어 있다는 것과 너와 걸을 때면 '너를 당혹스럽게 할 만큼 나의 깊은 내면에서 길어올린 말들을 두서없이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의 뿌리가 되는 생각,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낯부끄러운 의문들까지도 네 앞에서는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글에 쓰기도 하지만 글을 쓰면서 우리 스스로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 이해의 순간 우리는 새로워진다. 


3. 

  '당신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만일 이 주제로 글을 쓴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어떤 문장을 편지에 아로새기고 싶을까요?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 그 때는 아직 몰랐던 마음을 어떤 문장으로 전하고 싶을까요?


  저는 글의 어디쯤엔가는 이런 문장을 작은 꽃처럼 심어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슬픔의 나무에는 언제나 사랑의 꽃잎이 깃들어 있고 아름다운 것들은 여전히 당신의 마음 안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우울과 절망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거기에 좋은 마음이 봄날의 햇볕처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땐 뒤돌아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고 손을 흔들며 이젠 안녕이라고 말해요. 당신의 과거도 똑같이 당신에게 명랑한 손을 흔들어 줄 거예요. 당신이 어떻게 존재했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제 당신은 당신 밖에서 지혜와 행복을 찾지 않아요. 그건 언제나 당신 안에 있었으니까요. 

  어제의 슬픔은 오늘의 장미, 내일의 붉은 가슴이 되어줄테니까, 이제 걱정말고 당신으로 살아요. 언제나 힘을 보내요."   





작가의 이전글 여름의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