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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31. 2022

당신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1.

  오래전 시 창작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오늘 만난 시적 순간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날은 1교시였고 여름 아침이었으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럴 때 아이들은 대답하기 힘들어하는데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조금 심드렁하게 앉아 있을 때 그 표정들을 자세히 바라본다. 언제나 반드시 한 명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발견한 어떤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학교에 오기까지 당신의 시적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줄래요?"


  아이는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평소보다 일찍 분주히 집을 나섰는데 아파트 경비실에서 수위 아저씨가 교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전날 근무자였던 분이 수위실을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갑자기 수위실 앞에 핀 작은 장미꽃을 무릎을 쪼그리고 허리를 숙여 바라보았다고 했다. 희끗희끗한 흰머리의 수위 아저씨는 서둘러 집에 가려고 하지 않고 왜 천천히 느긋하게 비를 맞고 있는 장미꽃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아이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 풍경이 자기가 오늘 만난 시적 순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문득 교실에 새로운 공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것들이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시의 마음이다. 아끼고 간직하고 보호하고 지켜주려는 마음도 시의 마음이다. 수위 아저씨는 장미꽃이, 시 창작 수업의 아이는 아저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위 아저씨는 장미꽃에 매달린 빗방울의 숫자라도 세시려고 그랬을까? 하고 묻고는 아저씨의 마음으로 아저씨의 행동을 읽어보자고 했다. 아저씨와 장미꽃 사이에서 아름다움이, 시적 순간이 태어난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거기에 시의 마음이 있을 거라고도 한 것 같다. 지금은 아이들이 아저씨의 마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뭐라고 말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모두 그날 아침잠에서 깨어난 후부터 학교로 오기까지 짧은 시간에 일어났던 시적 순간을 이야기하고 떠드느라 수업을 하지 못했던 것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여름의 빗방울들처럼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의 아이들이다. 어떤 시간, 어떤 공간, 어떤 사람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 시간과 공간, 특히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시 창작 수업이 아이들에게 이야기의 시간이 되기를 언제나 소망한다.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고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으며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2.

  엄마는 1945년 음력 7월 6일에 태어났다. 엄마의 생일은 다음 주지만 미리 짧은 편지를 썼다.


  엄마에게

  엄마, 음력 7월 6일은 엄마의 생일, 엄마는 더운 여름에 태어났구나. 가끔 때마다 엄마 허리가 너무 많이 굽어서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아팠어. 엄마는 더 작아지고 예쁘고 귀여워져서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 것 같아.

  국민학교 때 오전반 수업을 하고 돌아온 날, 그때도 여름이었는데 엄마가 마루에 가득한 검정 겨울 스웨터 앞에서 얼굴을 무릎에 묻고 울고 있는 걸 봤어. 엄마는 내가 본 걸 모르겠지? 그때 난 엄마에게 나도 모르는 슬픔이 너무 많이 있다는 걸 처음 안 것 같아. 학교 운동장에 가서 그네를 타고 운동장을 몇 바퀴 달리고 들판에 가서 맨드라미를 일없이 꺾고 저녁 무렵 집으로 다시 돌아간 게 아직도 기억이 나. 엄마, 그때 많이 슬펐어?    

  엄마가 친한 아줌마에게 돈을 빌리고 분명히 갚았는데 그 아줌마가 안 갚았다고 해서 엄마가 속상해서 집으로 돌아온 날도 기억이 나. 엄마는 수첩과 달력을 계속 살펴보면서 혼잣말을 하다가 그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리고 한참 동안 방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어.  

  그래도 엄마는 우리에게 짜증을 낸 적도 화를 낸 적도 때린 적도 없었어. 엄마는 착했고 모든 걸 참았어. 그리고 엄마는 언제나 혼자 울었어. 그게 지금 돌아보면 참 마음이 많이 아파.

  엄마는 여전히 내가 고등학교 야간 자율 학습할 때 매점에서 라면 사 먹을 돈도 못준 걸 마음 아파해. 나 문제집 못 사준 것도, 내가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학원 못 보내준 것도 슬퍼해. 내가 아팠을 때 제때 병원 데려가지 못했던 것도 아파해. 내가 슬픈 일을 겪을 때마다 날 지켜주지 못한 걸 미안해해. 치킨이나 고기 같은 거 많이 못 사준 것도 미안해해.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던 날, 내가 조금 더 있다가 간다고 했더니 엄마가 얼른 가라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엄마는 지금 아프니까 내가 있어줄게 했잖아. 그랬더니 엄마가 그랬어. "네가 더 아픈 거 다 알아" 내가 뭘 아파?하니까 엄마는 "난 네가 아픈 게 항상 아파" 그랬잖아. 우린 서로가 아픈 걸 서로 알고 있었나 보다. 엄마는 나에게 착하라는 말, 따뜻하라는 말 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살라고 말해준 것 같아. 그건 참 신기한 일이야 엄마, 말하지 않고 전해줄 수 있는 것. 엄마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게 다 전해졌어. 그래서 항상 감사해요.      


  엄마가 속상해서 오래 나에게 말할 때가 있잖아. 할 말이 많은 건데, 그럴 때는 잘 들어주고 싶어. 얼마 전에 이제 엄마는 안 참겠다고 했잖아. 참는 거 그만하고 싶다고. 그래 엄마, 이제 슬픈 일 그만해.

  엄마 우리에겐 너무 슬픈 일들이 많았다. 그치? 그래도 엄마랑 나, 그동안 서로에게 의지가 많이 된 것 같아. 엄마에게 더 잘해주고 싶어. 엄마 곁에 계속 있을 거고, 이젠 내가 지켜주고 보호해줄게.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도 함께 해볼게. 그러니 엄마 이제 아프지 말아요.   


3.

  너무 슬퍼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사소하고 소박한 바람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여름 비가 내린다. 오래 잠들었다가 깨어나 바라보는 하늘은 어둡고 빗소리는 굵지만, 저 구름 뒤에는 언제나 당신의 햇살이 빛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씩씩하고 다정하고 따뜻하고 강한 사람으로 이 여름을 지나가고 싶다.   


  당신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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