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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Aug 04. 2022

사랑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사랑의 기억을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1. 

  시 창작 수업 시간의 어디쯤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꼭 사랑의 기억에 대해 물어본다. 사랑하고 사랑받은 경험, 아! 그것이 사랑이었구나 하고 여전히 느끼고 있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그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머뭇거리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기억은 언제나 실제로 일어난 일과 일어났을 것 같은 일과 일어났으면 좋겠는 일이 함께 있는 거라고 말해준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일을 사랑으로 기억하는 행위 그 자체,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고 표현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더 의미 있을 것 같다고 말해준다.  


  사랑의 기억은 나를 쪼그라들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나를 규정하고 평가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니까. 사랑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아닌 나'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으로 있으니까.       


2. 

  사랑의 기억에 대해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아이들은 글을 쓴다. 말은 희미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지만 글은 죽지 않고 오래 살아있을 수 있으니까. 기억을 붙잡아서 단단히 마음속에 새겨 넣을 수 있으니까. 시 창작 수업시간에 '이수'가 쓴 사랑의 기억이다.


  "있잖아, 엄마 들어봐, 다인이랑 점심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만든 작품을 처음으로 보여줬어. 정겸이가 들어와서 같이 봤는데 너무너무 좋대.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막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았어. 어제는 채윤이가 내가 죽는 꿈을 꿨대.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서 울었대. 꿈이긴 해도 내 장례식에서 울어줬대. 그래서 고마웠어. 채원이랑 이야기를 나눴는데, 채원이가 나를 많이 응원한다고 말해줬어. 감동받아서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 체원이가 문자로 나도 사ㄹ. 까지만 써서 보내줬어. 원래 이런 얘가 아닌데. 기분이 좋았나?

  요즘 동아리에 가면 기분이 너무 좋다! 나는 내가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거기 있으면 내가 뭐라도 된 것 같고 자신감이 생겨. 시 창작 시간에 철원쌤이 나를 너무 자주 부르셔. 저번엔 이틀 연속으로 글 발표를 했어. 유독 마음에 안 드는 글이라 발표하기 정말 싫었는데. 엄마, 어떻게 생각해? 내 말 듣고 있어? 근데 오늘은 시 창작 끝나고 나한테 말을 거셨는데 글을 더 많이 써보라고 하셨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거긴 한데 나 글 쓸 시간이 있을까?

  나 전시한다고 인스타에 올리니까 호윤이가 디엠으로 얘들 몇 명 모아갈까? 하고 물어봤어. 고마운데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티 내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어. 서연이는 나 보면 항상 엄청 밝게 인사해줘. 저 멀리서부터 이수야아 하면서 손을 흔드는데 그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 다인이랑 수연이가 써준 생일편지는 다시 봐도 너무 사랑스러운 거 같아. 오늘도 또 읽었어. 난 친구를 참 잘 둔 것 같아. 엄마는 오늘 뭐했어?"


  이수의 글에는 사랑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사랑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사랑으로 기억하고 부르는지.....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사랑의 본질과 목적을 탐구하는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사랑의 경험과 기억을 주는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자긍심'은 '사랑이 만드는 아름다운 기적'으로 '경탄'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로미터'로 표현된다. 사랑받은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마음과 힘을 갖게 된다. 사랑은 누군가 당신의 존재 자체를 경탄할 때 비로소 시작되니까.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면서 사랑은 시작된다.  

  우리는 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우리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 나를 미워하고 책망하고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채찍질해왔던가. 그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혼자 울었던가. 이수의 글처럼 사랑은  '나는 내가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거기 있으면 내가 뭐라도 된 것 같고 자신감이 생기'는 힘을 갖게 한다. 그 힘으로 우리는 힘겨운 시간을 건너간다. 


3.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사랑의 기억을 갖게 해 줄 수 있을까? 독서실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을 어떤 아이에게도, 긴장하며 시험장에 들어서는 아이에게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러 첫 직장에 가는 아이에게도, 햇살이 눈부신 여름의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있을 아이에게도, 좀처럼 낫지 않는 것 같은 불안과 우울로 막막해하는 아이에게도,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오랜만에 여름의 거리로 나서는 아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마음의 나날들, 몸에 새겨지는 마음의 병들로 쓸쓸히 무너지지 않고, 높아지는 여름의 초록 나무들처럼 내 마음과 영혼이 더욱 따뜻하고 높고 강해졌으면 좋겠다. 이 여름의 당신과 가을과 겨울과 봄의 당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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