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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Oct 23. 2022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당신과 나의 미래의 일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기 시작하며

1.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병원 옆의 작은 서점에서 샀다. Jesse Stone의 표지 그림은 끝이 없을 것 같은 언덕과 산을 지나 밤의 달과 별을 향해 작은 조각배를 함께 저어 가는 두 사람을 담고 있다. Jesse Stone의 그림은 언제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 여기에서 핵심은 '끝이 보이지 않는'이 아니라 '가는'일 것 같다.  Jesse Stone 그림 속의 사람들은 걷거나 배와 말과 자동차를 타고 멈추지 않고 어디론가 계속 가고 있다.

  시인 황지우도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이여/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시인은 기다리는 일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가는 적극적인 사랑의 행동이라고 말하며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을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는 발걸음으로 바꾸어 놓는다.  


   가을의 노랗고 붉은 나뭇잎들이 마치 그림처럼 햇살과 함께 눈부시게 병원 마당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화가의 그림들을 찾아 한참 바라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달과 별을 향해 우리는 함께 계속 가고 있는 것일까?'


Jesse Stone의 그림들


2.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아이들 때문에 운 적이 있었다. 그 울음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는데 가르치는 일을 진심으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 울음을 피할 수 없다. 파커 파머가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 쓴 것처럼 교직이 힘들고 어렵고 복잡한 요인이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가르친다는 점'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르침은 그 최전선에 결국 교사 자신의 영혼을 내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파커 파머는 '가르침은 자신의 영혼에 거울을 들이대는 행위'라고까지 말했다. 가르치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교사에게 자신의 실존의 문제를 직면하게 한다.    

  그 선생님에게서 터져 나온 울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여리고 연약하고 애틋하여 진심이었던 울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다른 말 없이 '우린 이제 한 배를 탔네요'라고만 말했던 것 같다. Jesse Stone의 그림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배에서 내렸다. 이해한다.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니까. 하지만 가끔 혼자 달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찾아오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은 참 슬프기도 하다.    


3.

  책을 펼치는데 엽서 한 장이 떨어졌다. 기에 작가는 손으로 짧은 글을 써두었다.


달을 바라볼 때마다 지금 걷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달까지 걸어갈 수는 없겠지만,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걸어갈 수는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걷는 사람의 발은 달에 닿아 있습니다. 멈추지 마실, 계속 걸어가시길,

2022년 가을의 김연수



  미래는 확정되고 고정된 사실과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래는 미래에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어떤 일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로 가져와서 지금 여기에서 이 순간에 시도하고 경험하고 실험하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시간의 깊이를 확보하는 것, 즉 과거의 불꽃과 씨앗을 해석하고 성찰함으로써 현재를 헤아리고 살피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 해 보는 것이다.  

  작가는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걸어갈 수는 있다'라고 했다. 그 '사람의 발은 달에 닿아' 있다고도 했다. 지금 내가 만드는 꽃이 이미 미래의 꽃이라는 사실, 우리가 지금 사랑하기 위해 애쓰며 하는 말과 행동이 결국 미래의 우리라는 사실, 변하지 않는 것에 절망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믿어보라는 것.


  아직 나는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지도 않았지만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가라는 작가의 말과 미래는 이토록 평범하다는 제목 앞에서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그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가을 햇살 옆에 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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